2005년 02월 19일
월간지 [좋은 생각] 비판 3
이게 압권입니다.....
3월 10일자 오늘의 만남 [자폐아와 자개아]
..........................
읽고 울컥해서... 너무 열받아서... 너무 화가 나서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지도 못하겠더군요.
....정윤철 감독님이면.... [말아톤] 감독맞지요?
........................그 분의 글이었습니다.
어떤 글인지 보실 분은 [좋은 생각] 3월호를 사서 보세요. 2천원밖에 안 하더군요.
저는... 뭔가 지켜 줄 대상을 변호하기 위해 남들을 깎아내리는 식의 서술을 정말 싫어합니다. 장애인 분들을 칭찬하기 위해서 비장애인 사람들을 깎아내릴 필요는 없는 겁니다. 저는 정말 그런 식의 서술을 싫어합니다. 비장애인들을 경멸하면서 치켜세운 장애인의 가치는, 누구더러 인정하라는 겁니까?
아래는 비판글입니다. 보실 분은 클릭하세요.
그게... 그게... 그게 예절이라구요?
히요의 글들을 많이 읽은 분들이라면 잘 아실 겁니다. 제가 예의와 예절에 대해서, 진심어린 인간관계와 도덕과 행복에 대해서, 배려와 마음 씀씀이에 대해서 얼마나 진지한 관심을 가지고 있고 그 가치를 배우고 감탄하며 수호하려고 하는지를요.
오늘날의 예절은 처세술처럼 점점 변해갑니다. 예의 예절의 본뜻은 진심어린 마음으로 상대를 존중하며 행동하기 위해서 배워 갖추는 것이었지만 요새의 예의 예절은 안 하면 남들이 비난하니까, 남들의 눈에 안 좋게 비치니까 마지못해 하는 수준으로 저하되는 경향이 있지요.
사람들이, 처세술처럼 겉만 이용해 먹는 형태로 예절을 수단화하는 이 상황에서는, 예절의 본뜻을 되찾자는 생각이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또, 그 처세술식의 수단화된 예절의식을 가지고 살아온 사람은 한 번쯤 스스로의 태도가 진심어린 것인가를 반성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분명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런 처세술식 예절의 피상적 형태에 대한 비판이 예절 그 자체에 대한 비난이 될 수는 없습니다.
정윤철님의 글의 요지는 이렇습니다.
'자폐아들은 감정을 숨기는 기술이 없기에 도리어 완전히 진실하게 표현해낸다, 위장할 능력이 없는 게 장애로 여겨지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스스로의 마음을 속이는데 급급하니 오히려 자폐아가 아닐까, 초원이는 꾸밈없는 얼굴이다.'
물론 저야 장애인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흔한 비장애인들에게, 장애인들에 대해 좀더 열린 마음을 갖자고 권하기는 할 지언정 비장애인들더러 마음을 속이는 데 급급하다느니 도리어 자폐아라느니, 그런 비난들은 퍼붓지 않을 것입니다. 뭐 이런 주장의 공감과 반대야 정윤철님과 저의 사상의 차이이자 가치관의 차이일테니 조금 후에 다루겠습니다.
저를 정말 어찔할 정도로 분노케 한 부분은 저 주장을 정당화하기위해 '예절'에 대해서 황당한 오명을 씌운 부분입니다.
「....문명인은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교양이라고 배워 왔다. 그것이 집대성된 것이 바로 '예절' 이다. 문화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힘들어도 내색하지 않아야 하고,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친한 척 손을 내밀어야 한다. 그것이 예절이고 교양인의 자세이며 그래야 인간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도대체 누가 저따위 것을 예절이라고 합니까????????
세상 살려면 그렇게 해야 한다는 '처세술' 이라고는 아마도 부를 것입니다. 비판 받을 만 하죠. 하지만 사람들이 저걸 '예절' 이라고 부릅니까? 예절이 오염되었다고 하지, 저런 걸 진짜 '예절' 이라고 하진 않잖습니까.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교양이 아니라, 감정을 있는 그대로 몽땅 쏟아내지 않고 절제하는 것이 교양입니다. 감정을 죄다 은폐하라는 게 아니라, 서로의 상생을 추구하는 데 해가되지 않을 정도로 감정을 조절하라는 게 바로 교양입니다. 그리고 사람과 사람이 살아가는 상생의 사회를 위해서 필요한 예의들을 집대성한 게 예절입니다.
힘들어도 내색하지 않아야 하는 게 아니라 힘들다고 해서 자기자신만 생각하고 내색하는 것을 절제하고 타인의 노고도 알아주고 서로 적절하게 표현하고 격려하라는 게 예의입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친한 척 손을 내미는 게 예절이 아니라, 모르는 사람을 대할 때에도 그 사람을 존중하고 그 사람과의 만남을 감사히 여기라는 의미에서 반가운 마음으로 손을 내밀라는 게 예절입니다.
바로 이런게 예절이며, 인간관계에서의 상생과 화목을 추구하는 마음을 위해 자신의 거친 부분들을 다듬으라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이것이 인간관계를 진정으로 가치있게 돕습니다.
이러한 '예절' 을, 뭐라고요? 친한 척 손 내밀고, 힘들면 내색하지 말고, 감정은 드러내지 말고, 그런 게 예절이라고요? 그런 의미라면 저 분 말씀에 따라 예절을 다 버리고 사는 쪽이 낫습니까? 자폐증을 겪는 장애인분들의 미덕이, '예절이란 게 가치없기 때문에' 예절을 모르는 게 미덕인 겁니까? 그건 장애인분들에게도 모욕같은데요.
저 글을 읽으면 예절을 지키는 건 속물적인 속세의 성공을 위한 일이고, 그래서 현대인들은 마음을 숨기므로 자폐아이며, 자폐증 장애인분들이 도리어 솔직하고 건강하고 아름답다는 식으로 묘사됩니다. 정말 그런 겁니까? 저는 전혀 공감 못하겠습니다.
예절을 지키는 건 상생을 위한 방법이고, 서로를 위한 자기절제입니다. 현대인들은 그 예절을 처세술적인 측면만 취하는 경향이 있어서 자기 감정을 드러내는 데 곤란을 겪기도 하지요. 그러나 예절을 버릴 게 아니라 남과 나를 둘 다 존중하는 마음으로 예절을 되찾아야 할 일입니다.
자폐증 장애인분들은 비장애인 분들에게 요구되는 만큼의 자기절제와 예절을 요구하기 곤란하죠. 그 분들에게는 그 분들이 할 수 있는 나름의 예절이 있습니다. 비장애인 사람들만큼은 아니겠지만 그 분들도 서로서로, 그리고 자신에게 마음을 여는 사람을 위해, 서로를 위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드러내거나 절제하거나를 마음먹는 건 똑같습니다.
아름다운 건 얼마나 솔직하냐가 아니라, 얼마나 타인을 배려하고 생각하느냐입니다.
자폐증 장애인분들이 아름다운 건 솔직해서가 아니라, 그럼에도 그 분들에게도 꿈과 인생과 자아가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드러내는 형태가 다를지라도,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있을 때 그분들도 비장애인들도 함께할 수 있는 거지, 그냥 솔직해지는 게 다가 아닙니다. 현대인들이 해야할 것은 솔직해지는 게 아니라, 나와 남이 상생하는 예절을 찾아 자기 자신도 남도 둘 다 행복하게 하는 태도를 배우는 것입니다.
그게 아니면, 장애인 분들을 멸시하고 으스대는 사람도 감정을 드러내고 솔직해질까요? 말도 안 되는 소립니다. 비장애인들 끼리도 서로 감정을 드러내고 솔직해질까요? 나 너 처음 봤으니 친하지도 않고 그러니 악수도 안 할래. 그래야 됩니까? 그렇게 안 하면 자기 마음을 가리는 데 급급한 자폐 현대인인가요.
비장애인분들을 비난함으로써 장애인분들을 추켜올려봤자 좋아지는 건 하나도 없습니다.
비장애인분들의 입장도 이해하고 그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서도 생각하고, 그리고 함께 장애인 분들의 입장과, 그 분들의 행복을 위해서도 생각하자는, 모두 함께 행복해지는 길을 추구해야지요.
장애인 분들을 변호하기 위해 비장애인 분들을 비난한다는 발상은 장애인을 낮춰보는 비장애인이나 사실상 별반 다를 것 없다고 생각합니다. 바람직하지 못한 비장애인이 장애인더러 '장애가 있으니 2등 인간' 이라고 취급하는 것과, 정윤철님이 비장애인더러 '초원이보다 솔직하지 못한 자폐가 있는 건 오히려 너희들' 이라고 비난하는 것과, 과연 어디가 얼마나 다른 겁니까.
예절은 갖춰야 될 덕목입니다. 처세술이 아니라 진정 사람이 사람과 살아가는 데 필요한 아름다움을 이루기 위해서 갖춰야 할 덕목입니다. 나 자신의 감정만을 다 쏟아내기에 앞서 남을 생각할 줄 아는 바로 그 마음을 위해서 예절이 필요합니다. 예절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이 글이 덧씌운 예절에의 오명은 정말 저를 간만에 분노하게 했습니다.
비장애인들은 예절을 버리고 솔직해 질 게 아니라 예절의 본뜻을 되찾아야 오히려 장애인 분들을 이해하게 됩니다. 예절이란 상대방과 '상생하는 방법' 이니까요. 실제로 저 장애인을 기피하고 무시하고 싶은 생각이 들더라도, 상대방을 존중하는 마음과 배려하는 마음에서 예절바르게 행동하는 쪽이 장애인들을 정말로 존중하는 방법이라는 뜻입니다.
장애인분들이 아름다운 건 솔직해서가 아니라 그 분들에게도 비장애인 사람들과 같은 꿈이나 기분과 자아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절' 이 안 좋은 거고 장애인분들이 '예절' 을 못지키니 솔직해서 좋다는 식의 구조가 되어버리는 저 논리, 정말 장애인 변호 맞는지도 의심스럽습니다.
'우리가 그들을 거부한다면 그들도 우리를 거부할 것이다. 모름지기 감정이란 서로 주고받는 것이므로' 라고 말씀하셨는데, 장애인분들을 거부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다면 정윤철님은 글 속에서 비장애인들의 예절과 예절이 필요한 삶의 방식 그 자체를 비난하는 것부터 하지 말았어야 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초원이의 이야기 - [말아톤]은 아직 보지 않았습니다. 호평이 많았지요. 그래서 좋게 여기고 있었고, 지금도 좋게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초원이 한 명을, 혹은 자폐증 장애인 분들을 이해시키기 위해서 다른 모든 가치를 싸잡아 비난하는 일은 답이 아닙니다. 비난해서 죄책감이 들게 하고 반성하게 압박하는 것은 답이 아닙니다.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고, 그래서 서로 마음을 열 수 있는 쪽이 답이니까요.
[좋은 생각] 이란 잡지에, 그 좋은 영화 [말아톤] 의 감독님이 쓴 바로 이 글.
...때문에 열받아서 더 못 보겠습니다. 11일자 이후로부터는 한 며칠 후에나 보도록 할 생각입니다.
3월 10일자 오늘의 만남 [자폐아와 자개아]
..........................
읽고 울컥해서... 너무 열받아서... 너무 화가 나서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지도 못하겠더군요.
....정윤철 감독님이면.... [말아톤] 감독맞지요?
........................그 분의 글이었습니다.
어떤 글인지 보실 분은 [좋은 생각] 3월호를 사서 보세요. 2천원밖에 안 하더군요.
저는... 뭔가 지켜 줄 대상을 변호하기 위해 남들을 깎아내리는 식의 서술을 정말 싫어합니다. 장애인 분들을 칭찬하기 위해서 비장애인 사람들을 깎아내릴 필요는 없는 겁니다. 저는 정말 그런 식의 서술을 싫어합니다. 비장애인들을 경멸하면서 치켜세운 장애인의 가치는, 누구더러 인정하라는 겁니까?
아래는 비판글입니다. 보실 분은 클릭하세요.
그게... 그게... 그게 예절이라구요?
히요의 글들을 많이 읽은 분들이라면 잘 아실 겁니다. 제가 예의와 예절에 대해서, 진심어린 인간관계와 도덕과 행복에 대해서, 배려와 마음 씀씀이에 대해서 얼마나 진지한 관심을 가지고 있고 그 가치를 배우고 감탄하며 수호하려고 하는지를요.
오늘날의 예절은 처세술처럼 점점 변해갑니다. 예의 예절의 본뜻은 진심어린 마음으로 상대를 존중하며 행동하기 위해서 배워 갖추는 것이었지만 요새의 예의 예절은 안 하면 남들이 비난하니까, 남들의 눈에 안 좋게 비치니까 마지못해 하는 수준으로 저하되는 경향이 있지요.
사람들이, 처세술처럼 겉만 이용해 먹는 형태로 예절을 수단화하는 이 상황에서는, 예절의 본뜻을 되찾자는 생각이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또, 그 처세술식의 수단화된 예절의식을 가지고 살아온 사람은 한 번쯤 스스로의 태도가 진심어린 것인가를 반성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분명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런 처세술식 예절의 피상적 형태에 대한 비판이 예절 그 자체에 대한 비난이 될 수는 없습니다.
정윤철님의 글의 요지는 이렇습니다.
'자폐아들은 감정을 숨기는 기술이 없기에 도리어 완전히 진실하게 표현해낸다, 위장할 능력이 없는 게 장애로 여겨지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스스로의 마음을 속이는데 급급하니 오히려 자폐아가 아닐까, 초원이는 꾸밈없는 얼굴이다.'
물론 저야 장애인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흔한 비장애인들에게, 장애인들에 대해 좀더 열린 마음을 갖자고 권하기는 할 지언정 비장애인들더러 마음을 속이는 데 급급하다느니 도리어 자폐아라느니, 그런 비난들은 퍼붓지 않을 것입니다. 뭐 이런 주장의 공감과 반대야 정윤철님과 저의 사상의 차이이자 가치관의 차이일테니 조금 후에 다루겠습니다.
저를 정말 어찔할 정도로 분노케 한 부분은 저 주장을 정당화하기위해 '예절'에 대해서 황당한 오명을 씌운 부분입니다.
「....문명인은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교양이라고 배워 왔다. 그것이 집대성된 것이 바로 '예절' 이다. 문화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힘들어도 내색하지 않아야 하고,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친한 척 손을 내밀어야 한다. 그것이 예절이고 교양인의 자세이며 그래야 인간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도대체 누가 저따위 것을 예절이라고 합니까????????
세상 살려면 그렇게 해야 한다는 '처세술' 이라고는 아마도 부를 것입니다. 비판 받을 만 하죠. 하지만 사람들이 저걸 '예절' 이라고 부릅니까? 예절이 오염되었다고 하지, 저런 걸 진짜 '예절' 이라고 하진 않잖습니까.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교양이 아니라, 감정을 있는 그대로 몽땅 쏟아내지 않고 절제하는 것이 교양입니다. 감정을 죄다 은폐하라는 게 아니라, 서로의 상생을 추구하는 데 해가되지 않을 정도로 감정을 조절하라는 게 바로 교양입니다. 그리고 사람과 사람이 살아가는 상생의 사회를 위해서 필요한 예의들을 집대성한 게 예절입니다.
힘들어도 내색하지 않아야 하는 게 아니라 힘들다고 해서 자기자신만 생각하고 내색하는 것을 절제하고 타인의 노고도 알아주고 서로 적절하게 표현하고 격려하라는 게 예의입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친한 척 손을 내미는 게 예절이 아니라, 모르는 사람을 대할 때에도 그 사람을 존중하고 그 사람과의 만남을 감사히 여기라는 의미에서 반가운 마음으로 손을 내밀라는 게 예절입니다.
바로 이런게 예절이며, 인간관계에서의 상생과 화목을 추구하는 마음을 위해 자신의 거친 부분들을 다듬으라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이것이 인간관계를 진정으로 가치있게 돕습니다.
이러한 '예절' 을, 뭐라고요? 친한 척 손 내밀고, 힘들면 내색하지 말고, 감정은 드러내지 말고, 그런 게 예절이라고요? 그런 의미라면 저 분 말씀에 따라 예절을 다 버리고 사는 쪽이 낫습니까? 자폐증을 겪는 장애인분들의 미덕이, '예절이란 게 가치없기 때문에' 예절을 모르는 게 미덕인 겁니까? 그건 장애인분들에게도 모욕같은데요.
저 글을 읽으면 예절을 지키는 건 속물적인 속세의 성공을 위한 일이고, 그래서 현대인들은 마음을 숨기므로 자폐아이며, 자폐증 장애인분들이 도리어 솔직하고 건강하고 아름답다는 식으로 묘사됩니다. 정말 그런 겁니까? 저는 전혀 공감 못하겠습니다.
예절을 지키는 건 상생을 위한 방법이고, 서로를 위한 자기절제입니다. 현대인들은 그 예절을 처세술적인 측면만 취하는 경향이 있어서 자기 감정을 드러내는 데 곤란을 겪기도 하지요. 그러나 예절을 버릴 게 아니라 남과 나를 둘 다 존중하는 마음으로 예절을 되찾아야 할 일입니다.
자폐증 장애인분들은 비장애인 분들에게 요구되는 만큼의 자기절제와 예절을 요구하기 곤란하죠. 그 분들에게는 그 분들이 할 수 있는 나름의 예절이 있습니다. 비장애인 사람들만큼은 아니겠지만 그 분들도 서로서로, 그리고 자신에게 마음을 여는 사람을 위해, 서로를 위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드러내거나 절제하거나를 마음먹는 건 똑같습니다.
아름다운 건 얼마나 솔직하냐가 아니라, 얼마나 타인을 배려하고 생각하느냐입니다.
자폐증 장애인분들이 아름다운 건 솔직해서가 아니라, 그럼에도 그 분들에게도 꿈과 인생과 자아가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드러내는 형태가 다를지라도,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있을 때 그분들도 비장애인들도 함께할 수 있는 거지, 그냥 솔직해지는 게 다가 아닙니다. 현대인들이 해야할 것은 솔직해지는 게 아니라, 나와 남이 상생하는 예절을 찾아 자기 자신도 남도 둘 다 행복하게 하는 태도를 배우는 것입니다.
그게 아니면, 장애인 분들을 멸시하고 으스대는 사람도 감정을 드러내고 솔직해질까요? 말도 안 되는 소립니다. 비장애인들 끼리도 서로 감정을 드러내고 솔직해질까요? 나 너 처음 봤으니 친하지도 않고 그러니 악수도 안 할래. 그래야 됩니까? 그렇게 안 하면 자기 마음을 가리는 데 급급한 자폐 현대인인가요.
비장애인분들을 비난함으로써 장애인분들을 추켜올려봤자 좋아지는 건 하나도 없습니다.
비장애인분들의 입장도 이해하고 그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서도 생각하고, 그리고 함께 장애인 분들의 입장과, 그 분들의 행복을 위해서도 생각하자는, 모두 함께 행복해지는 길을 추구해야지요.
장애인 분들을 변호하기 위해 비장애인 분들을 비난한다는 발상은 장애인을 낮춰보는 비장애인이나 사실상 별반 다를 것 없다고 생각합니다. 바람직하지 못한 비장애인이 장애인더러 '장애가 있으니 2등 인간' 이라고 취급하는 것과, 정윤철님이 비장애인더러 '초원이보다 솔직하지 못한 자폐가 있는 건 오히려 너희들' 이라고 비난하는 것과, 과연 어디가 얼마나 다른 겁니까.
예절은 갖춰야 될 덕목입니다. 처세술이 아니라 진정 사람이 사람과 살아가는 데 필요한 아름다움을 이루기 위해서 갖춰야 할 덕목입니다. 나 자신의 감정만을 다 쏟아내기에 앞서 남을 생각할 줄 아는 바로 그 마음을 위해서 예절이 필요합니다. 예절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이 글이 덧씌운 예절에의 오명은 정말 저를 간만에 분노하게 했습니다.
비장애인들은 예절을 버리고 솔직해 질 게 아니라 예절의 본뜻을 되찾아야 오히려 장애인 분들을 이해하게 됩니다. 예절이란 상대방과 '상생하는 방법' 이니까요. 실제로 저 장애인을 기피하고 무시하고 싶은 생각이 들더라도, 상대방을 존중하는 마음과 배려하는 마음에서 예절바르게 행동하는 쪽이 장애인들을 정말로 존중하는 방법이라는 뜻입니다.
장애인분들이 아름다운 건 솔직해서가 아니라 그 분들에게도 비장애인 사람들과 같은 꿈이나 기분과 자아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절' 이 안 좋은 거고 장애인분들이 '예절' 을 못지키니 솔직해서 좋다는 식의 구조가 되어버리는 저 논리, 정말 장애인 변호 맞는지도 의심스럽습니다.
'우리가 그들을 거부한다면 그들도 우리를 거부할 것이다. 모름지기 감정이란 서로 주고받는 것이므로' 라고 말씀하셨는데, 장애인분들을 거부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다면 정윤철님은 글 속에서 비장애인들의 예절과 예절이 필요한 삶의 방식 그 자체를 비난하는 것부터 하지 말았어야 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초원이의 이야기 - [말아톤]은 아직 보지 않았습니다. 호평이 많았지요. 그래서 좋게 여기고 있었고, 지금도 좋게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초원이 한 명을, 혹은 자폐증 장애인 분들을 이해시키기 위해서 다른 모든 가치를 싸잡아 비난하는 일은 답이 아닙니다. 비난해서 죄책감이 들게 하고 반성하게 압박하는 것은 답이 아닙니다.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고, 그래서 서로 마음을 열 수 있는 쪽이 답이니까요.
[좋은 생각] 이란 잡지에, 그 좋은 영화 [말아톤] 의 감독님이 쓴 바로 이 글.
...때문에 열받아서 더 못 보겠습니다. 11일자 이후로부터는 한 며칠 후에나 보도록 할 생각입니다.
# by 히요 | 2005/02/19 13:45 | 책 관련 | 트랙백 | 덧글(6)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역시 논점으로부터 백만광년 떨어져서)히요님 글 중에는 감탄 나오는 것이 참 많습니다. 제가 어렴풋하게 생각하고 있던 걸 마치 제 머릿속 들여다보신 것처럼 콕 집어서 훨씬 명료하게 표현해주신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서요. 앞으로도 화이팅입니다!^^
이 글에서는, 비장애인 현대인들이 어째서 감정을 드러내는 게 서툰지, 드러내는 건 좋은지, 어느 선까지 드러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싹 빠져 있으니, 비난 대상에 대한 성찰이 심하게 부족하다는 게 참 .... 아연했습니다.
저는 장애인들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비장애인들의 거리감을 일정부분 제대로 짚어 주고 방법을 모색하는 쪽이 백배는 낫다고 생각합니다. 서로 잘하자고 다독여야지, 한쪽을 비난함으로써 다른 한 쪽을 올린다는 건 정말 말씀대로의 '안티테제' 방식의 가치만들기와 같습니다.
(......오옷, 화이팅 감사합니다)
(이런 내용에서 누가 누구에게 고개 숙이는 게 나오면 완전 에러)
알바님은 가끔씩 포스트를 안 읽은 듯한 느낌이 드는 덧글을 쓰신다니까요 -_-+ (찌릿)
얼마전부터 히요님 블로그에서 글을 읽고 있습니다.
타인에 대한 배려가 어떤건지 정말 많이 배우게 됩니다.
엄격한 집안에선 교양도 하나의 예절처럼 가르칩니다.
교양없이 웃는 것-그저 보통사람보다 더 자주 웃을 뿐-도
예절이 없는 것처럼 나무라곤 하죠.
감독님은 그래서 그런 착각을 하신게 아닌가 싶습니다.
저도 어릴때부터 저 감독님처럼 예절이란 솔직해선 안된다는 인식이었거든요.
어디까지가 예절이며 교양이고 배려인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면
일단 자신을 낮추면서 주변의 눈치를 살피게 된다거나
상대에게 적당히 비위를 맞춰주는 정도로 이해하게 되는 거겠죠.
..라고 해도 예절에 대해 완전히 이해하고 행동한다는 건 역시 힘들겠지요
예절이 무엇인지 알아보고자 하고, 그것이 두 사람이건 세 사람이건 여러 사람이건 모두에게 더 좋은 것이 되려면 어떻게 되어야 할까를 생각한다면, 굳이 세세한 방식을 알지 않아도 제 모습을 갖출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 감독님 같은 황당한 식의 왜곡도 피할 수 있을테고요.
예의예절은 규칙이나 규범이라기 보다 '사람'을 위한 것이라는 걸 자각한다면, 그것에 매이지 않고도 유용하게 몸에 익힐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종종 들러 글도 읽어주시고 해주세요~ ^^)/
어느 쪽을 비난하건, 그런 비난을 통해 상호간이 '사랑' 하며 '이해' 하길 바라기란 어려운 일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