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루스에서의 논쟁....

덧글에 덧글을 타고 가다가, 문득 다른 블로그가 열렸다. 덧글에 링크가 되어있는 경우는 페이지 주소를 적어넣었을 때이니, 사실은 꼭 이글루 블로거가 아니라도 클릭이 되는 거였지.... 그리고 그곳에서, 이글루스에서는 유독 논쟁과 싸움이 많은 것 같다는 류의 글을 보게 되었다.

그런가? 그런 것 같다.

전문 토론용 공간도 아닌 개인공간 중심의 서비스에서, 그것도 익명성을 악용하는 게 아니라 아예 자신의 블로그를 걸고 논쟁에 나서 전면전을 펼치다니. 정말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나의 블로그에서는 예의바른 토론은 환영하고, 적대감이 드러나는 언쟁을 거부한다고 선언했지만, 사실상 쟁점적인 논쟁은 거부한다고 한 셈이나 다름없다. [이글루스에 논쟁이 일어났대] 라고 일컬어지는 것 중에서 양측이 서로 적대감을 갖지 않은 사건이, 서로를 공격(!)하지 않은 사건이, 합리적인 결론으로 도달하고, 사이가 괜찮아진 사건이 어디 있냔 말이지.

*** 무지 길어서 숨김 ***

그런 논쟁이 생산적으로 잘 해결되는 경우란 없다. 두 사람의 감정적 공격이 결국 논점보다 중심이 되어 사이가 갈라진다. 사태의 직접적인 책임이 있어 사과해야 할 입장인 사람도, 서로 감정싸움이 너무 심해 존심상 사과하기 거북하게 되면 사과하지 않고, 어쩔 때는 상대방을 되려 적반하장으로 비난하기도 한다.

혹여 사과하라고 몰리는 분위기가 된다고 해도 자신의 진짜 잘못과 원천적 실책을 정직하게 사과하는 게 아니라 '어쨌건간에 이 사태의 일정부분을 책임진다는 생각에서 사과한다'는 식으로, 결국 그냥 내가 참아주마 - 식으로 빠져나간다. 사과를 받은 쪽도, 사과를 받은 건지 도망가는 걸 보고 있는 건지 구별할 수 없게 되지만, 사과를 제대로 하라고 하면 이번엔 '사과 해도 시비냐, 저의가 뭐냐'는 소리를 들을 차례다.

블로그의 트랙백 기능은, 사안을 널리 널리 퍼뜨릴 수는 있되, 하나로 초점을 모으거나 전체상황을 파악하도록 돕는 데는 무력하다. 한 게시판에 한 주장에 관해 답글 (쪽글/덧글 말고 reply로) 이 여럿 달려 있는 건 읽기 쉽지만, 트랙백으로 온 사방팔방 퍼진 건 읽기 어렵다. 논지가 멀어지기도 쉽다. 중심점도 없고, 핀트가 빗나가도 잘 눈에 들어오지도 않으며, 어디서 무슨 사건이 또 새로 발생하는지도 알 수가 없다. 그걸 다 찾아보는 건 거의 불가능하리만치 방대하다.

여기서 또다른 문제점이 생겨난다. 다 알지 못하는 중간 참여자들은 논쟁의 중심점이 뭔지 모르고 논쟁의 중간에 새로 만들어진 작은 다른 갈등에 중심점을 놓게 되면서 잘잘못의 위치를 제대로 설정하지 못한다던지, 엉뚱한 소리를 하면서 논쟁을 더욱 흩어지게 만들고 또한 새로운 (그러나 중요하지 않은) 논점을 계속 낳는다.

게다가 싸우는 양측 태도도 결코 긍정적이고 수용적이지 않다보니, 혹여 상대방 측 주장자 중 한 사람이 '제가 잘못 알았군요' 라고 하더라도, '그렇게 설쳐놓고 이제와서 보니 아닌 줄은 알겠습니까? 애초에 좀 신중하셨어야죠' 라고 대응해 버리는 사람이 있다. 누가 정말 [합리적인 의사표현]을 하거나 [반성끝에 의견을 철회]할 생각을 하겠는가? 결국 지지않기 위한 오기싸움만이 남는다.

분명 거의 모든 논쟁의 시작점에서, 잘못한 쪽, 책임질 쪽, 사과할 쪽이 존재한다. 그들은 비판을 받아야 되고, 뭔가 고쳐야 되는 쪽이다. 그러나 비판하는 쪽이 지나친 감정적 비난과 비꼬는 표현들, 마구 날리는 말들을 퍼부음으로써 상대방으로 하여금 도저히 인정하고 숙여 나오지 못할 상황을 만들고 있기 때문에, 결국 잘못한 쪽 마저도 사과하지 않게 되고 마는 것이다.

이곳은 널리 싸움이 번지기에는 적합하지만, 결론으로 모아지는 건 불가능한 시스템, 즉 논점을 흐리고 얼버무리기 쉬운 시스템을 갖고 있다. 비판자가 그저 몰아부치는 공격자가 되어버리면, 그들이 옳은 주장을 하든 아니든 간에 논쟁은 싸움으로 변한다. 그러면 비판받는 쪽도 겸허히 받아들이기보다 논점이 흩어진 틈을 타 결론을 회피하게 되고, 결국 쌍방이 합리적으로 판단하여 내리는 논쟁의 결론은 없다. 서로, 결국 내가 옳았고 상대방이 심한 것으로 정리될 뿐이다.

논쟁이 일어날 때, 비판을 할 때. 그것은 상대방으로 하여금 비판을 받아들여 무언가 개선하기를 촉구하는 게 아닌가?

그러려면, 상대방이 비판을 받아들이게 만들어야 한다. 그건 설득력의 문제이고, 설득력은 공격성을 배제할수록 높아진다. 그리고 상대방의 잘못을 확실히 인식시키려면, 최대한 내 쪽에서는 잘못을 하지 말아야 한다. 비꼬고 놀리고 웃고 하면서 상대방만 자기 잘못을 반성하기를 바란다는 건 거의 어불성설이다. 자신의 '논지 외적인 태도 불량'은 논지 외적이므로 사과해도 되지 않는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무례는 무례만으로도 사과해야 될 문제이기 때문에. 그러나 무례를 사과하라고 하면 이번엔 말돌리지 말고 너의 잘못부터 인정하라고 나온다. 그렇게 싸움은 무한반복이 된다. 아무도 사과할 마음을, 반성할 마음을 가질 수 없고, 아무도 상대방에게 설득될 수 없다. 결국 생산적인 결론도 없고, 얼마나 화려하게 상대방을 비난하며 놀려대는가만 남는다.

이 와중에서 정말 생산적인 결론과, 상대방의 실책 인정/수정을 원했던 진심어린 토론자들은 허탈함을 가질 것이다. '내가 바란 건 이런 게 아닌데' 본의 아니게 다수의 싸움으로 번져버린 후에는 상처입은 사람들도 속출한다. 이들을 보면서도 느낄 것이다. '이런 걸 바란 게 아닌데'. 받아들일 수 없는 방식으로 가해지는 비판, 피해자의 속출, 토론과 논쟁에 대한 지긋지긋한 이미지 형성, 누가 그런 걸 바랬겠는가.

[그러니 논쟁 하지 말자]는 얘길 하려는 건 아니다. 이글루에는 정말 글솜씨있고 책많이 보고 자기생각과 주관이 뚜렷한 분들이 많으니 당연히 이곳에서 논쟁이 많이 일어나는 게 아니겠는가. 잘못이 있는데 그냥 참고 넘어가느니, 논쟁을 일으켜 비판을 하고 생각을 펼치고 시끄러워 지는 쪽이 백배 나으리라.

이 글 맨 처음으로 돌아가서, 이글루스엔 유난히 논쟁이 많다 - 는 말 아래에, 이글루스는 성인용이고 글잘쓰고 책좋아하는 분들이 꽤 많다보니 논쟁에 참여하려는 분들도 비교적 많은게 아닌가 싶다며, 이글루스를 옹호(?)하고 돌아왔다. 나는 이글루스에서 논쟁이 사라지길 바라는 게 아니다. 오히려, 다른 곳에서 그걸 의아해 할 때, 논쟁이 단지 지긋지긋하고 상처와 분열만 남기는 게 아니라, [논쟁은 긍정적인 거예요] 라는 말을 남길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비판과 의견제시, 수용, 개선. 그것이 논쟁이다.

논쟁을 논쟁이 아니라 그저 분쟁으로 만들어버리는 행동들이 혹시 없는가. 혹시 나도 그런 행동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합리적인 비판과 토론을 좋아하는 이글루스 논객들이라면 스스로에게도 '무엇을 위한 논쟁인가'를 계속 재점검해야하지 않을까.

by 히요 | 2004/08/27 23:24 | How to Live | 트랙백(1) | 덧글(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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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Airing at 2004/09/09 20:01

제목 : 즐겁게 논쟁하는 법.
이글루스에서의 논쟁.... 논쟁이라는 건, 흔히 있는 일이고 또한 조심해야 할 일이다. 아무리 좋은 의도로 시작했더라도 약간만 잘못하면, 논쟁이 언쟁이 되기 쉽고, 초점이 빗나가버리고, 나중에는 처음의 좋은 의도 따윈 사라져버리고 인신공격으로 끝나기 일쑤다. 조심해야 한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생각해 본 '싸우지 말고 즐겁게 논쟁하는 법' 첫째, 상대방을 상처입히지 말것. 상대방을 상처입히는 것은 논쟁에서 이기는 길이 아니다. 말을 돌려가며 비웃기, 격하하기, 인신공격. 인터넷이 사람의 얼굴......more

Commented by kritiker at 2004/08/27 23:59
정말 잘 읽었습니다. 자신의 블로그를 걸고 논쟁한다는 글을 보니, 듀나게시판의 모 님이 남기셨던 글이 갑자기 떠올랐어요^^;;
Commented by 히요 at 2004/08/28 00:10
듀나게시판의 모님이라니...(=.=) 궁금하게 만드시는 거죠....?

...특히 블로그를 걸고 논쟁할 때면, 예의를 지키지 않으면 생산적인 논쟁도 없다고 생각해요. 예의 없이 마구 대하는 상대방에게, 자신의 생각을 귀기울여 주고 진지하게 고민해 주리라 기대할 수가 없으니까요.
Commented by deepforest at 2004/08/28 00:33
상대방과의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기대감이 별로 없는 듯 합니다. 가끔 그런 글을 보면 뭔가 좌절감에다가 화가난 상태가 합쳐진 상태에 이르게되죠. 진정으로 상대방의 행동변화를 촉구하는 것인지 그렇지 않은지 궁금하게 되죠.
Commented by deepforest at 2004/08/28 00:42
트랙백 시스템에 관한 것은 확실히 그런면이 있군요. 지적하게 되니 새로 보게되었습니다.
아앗. 근데 위의 덧글 뭔가 문장이 맘에 안들어요. 끄응 ;;
Commented at 2004/08/28 01:49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월야 at 2004/08/28 01:59
히요님의 글을 보니 고개가 절로 끄덕이게 되네요. 논쟁은 좋은데 그것이 언쟁으로 번지는것을 보고 안타까워하는 입장으로서 논쟁이 있다면 주변 사람들은 그걸 중계해주거나 서로 비판해주고 서로의 의견이 긍정적으로 일끄게 해 주었으면 해요.
Commented by Eugene at 2004/08/28 10:33
아무래도 글로 논쟁하는 것이니,
시간도 더 걸리고 오해의 소지도 많지요.
'아예 자신의 블로그를 걸고 논쟁에 나서 전면전을 펼치다니. 정말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라는 말씀에 동감입니다.
Commented by 히요 at 2004/08/28 13:02
[비판을 받아들인다]에 대한 문화는 아직 우리나라에선 비교적 생소해서 그런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합니다. '비판과 구박 비난 야단 자존심세우기' 이런건 정말 흔하지만, '반성, 철회, 개선, 양보, 자존심굽히기'같은 건 희귀(-_- )하다고 할 수 있는 분위기죠.

게다가 얼굴을 맞대지 않고 있다보니 무례해지는 인터넷의 속성까지 겹치면, 아예 후자의 개념들은 찾아보기 힘들게 됩니다. 게다가 요즈음은 비판자들의 과민반응과 공격, 폭격이 문제를 그르친다는 점이 점점 분명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시작이 된 '논점'에서 옳은 쪽과 우위를 차지하기만 하면, 온갖 공격과 폭격으로 싸움을 만든다 - 라고나 할까. 몇몇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라 어쩌면 몰려다니는 참견자들이 증폭시키는 것이기도 하고....

이래가지고는 아무도 [건설적인 논쟁] 같은 게 존재한다고 신뢰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Commented by Tirsha at 2004/08/29 00:19
결론이 나지 않더라도, 대화의 종결시점에서 서로가 "유익했습니다"라며
웃을수 없다면 그건 논쟁이 아니라 싸움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Commented by 히요 at 2004/08/29 00:34
- 서로 웃을 수 없다면 합리적인 결론이나마 도출하던가.

- 아니면 티르샤님 말씀처럼, 결론이 나지 않을거면 토의만으로도 유익했다고 서로 인정할 수 있던가.

적어도 둘 중 하나는 성취해야, 그렇게 공들여 논쟁한 보람이 나겠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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