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날개 히요Hee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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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렁이 Real Situation

며칠 전 비오던 날 호잉이랑 등교하는 길에 기어가는 지렁이를 봤다. 같이 지렁이 기어가는 모습을 좀 관찰하고 학교에 보내고 돌아오는 길에 그 지렁이를 다시 보는데, 그 방향으로 가면 비가 그쳐도 지렁이가 살만한 곳이 없다. 날이 개고 물이 마르면 말라 죽겠지. 바로 2미터 옆 돌담 위에 작은 숲이 있는 언덕이 있고 아마 거기서 내려온 것 같은데, 지렁이가 알고 돌아갈 리도 없다. 이미 이 정도까지 자세히 봐버렸으면 인간의 본능 때문에 지렁이를 가엾게 여기게 되어버린다 후 -.-) 그래도 잡아 올려줄 걸 생각하니 너무 징그럽고 못 하겠어서 지나갔다. 다음 날 등교시키면서 같은 자리를 지나가는데 그 지렁이가 물이 아직 마르지 않은 건물 그늘 구석에 웅크려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도 쳐다보지 않을 수 없었다. 다음 날, 그늘이긴 하지만 물이 다 말라 있었고 지렁이는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하교길 책가방을 받아 돌아오면서 호잉이가 남긴 물병의 물이라도 지렁이에게 부어주고 왔다. 그리고 며칠 뒤 당연히 지렁이는 죽어서 개미나 여러 작은 벌레들이 먹어치웠고 날이 지나자 사람이 치운 흔적이 없는데도 아주 깔끔하게 분해되어 거의 사라져 있었다. 평생 비오는 날 내려왔다 날 개고 죽는 지렁이 한두번 본 것도 아닌데 하필 이렇게 자세히 가까이 보는 바람에 그 지렁이의 죽음에 너무 마음 편치 않았다. 비오는 날 엉뚱한 데로 가는 지렁이를 풀숲으로 올려다 줄걸 그랬나? 징그러워도 꾹 참고 다음 날이라도 올려다 줄 걸 그랬나? 근데 못 만지겠는 걸. 그러다 집에 몇 개 남아도는 배달음식점 나무젓가락이 생각났다. 가지고 다니다가 길잃은 지렁이를 만나면 이걸로 집어서 풀숲으로 돌려줄까? 그런데 일년에 지렁이 몇 번 본다고 -.- 젓가락을 매일 가져다녀 -.-) 진짜 쓸데없이 연장되고 적용되는 동정심, 인간의 본능이라 그런 걸 알면서도 그렇게 작용하는 걸 무시하기가 어렵다. 가방 속에 넣은 나무젓가락은 굳이 빼진 않았고 장마철이라는 이후 며칠간만 그냥 두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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