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 Real Situation

10대들의 나이브함에 종종 깜짝 놀란다. 애들이 순수하거나 해맑거나 착하거나 이런 건 아니고 그런 성향은 케바케인데, 성격이야 어떻든 공통적으로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매우 부족하다. 30대쯤 되면 남에게 함부로 속얘기를 하면 안 된다는 걸 다들 직간접적인 씁쓸한 기억 한두개와 함께 체득하고 있다. 비밀이라고 했는데 다 퍼뜨린 친구라든지, 별 거 아닌 얘기를 부풀리고 다니는 지인이라든지, 친할 때는 서로 털어놓고 보듬어주던 비밀들을 싸우자마자 일부러 무기로 사용하며 퍼뜨린다든지... 어지간히 믿을만한 사람이라는 확신이 없으면 속얘기는 안 하는 게 백번 낫다. 그래서 나는 간혹, 친하지도 않고 날 알게 된지 한두달밖에 안 되고, 수업 아닌 잡담을 단 한 마디도 해본 적 없는 학생이 갑자기 내게 1:1로 속얘기를 털어놓으면 깜짝 놀란다. 아니 날 뭘 믿고 이런 얘길 함? 내가 입 가볍고 막말하는 사람이면 그걸 가지고 얘를 엄청 스트레스 받게 만들 수도 있는 사안인데? 내가 안 그럴 사람으로 보였다거나 하는 문제는 아닌 게, 그런 경우 보통 학생은 나의 됨됨이를 판단하지 않고 그냥 털어 놓을 데가 필요한데 마침 나랑 1:1로 둘만 있어서... 그냥 이유가 그게 다다. 우연히 생긴 자리일 뿐. 나는 듣고 함구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그러는 건 아니다. 당연히 퍼뜨려선 안 될 말을 퍼뜨리고, '이건 비밀인데' 라며 사적인 얘기들이 나도는 일들이 언제나 가까이서 벌어지고 있다. 공공연하게 퍼지지는 않았다고 해도 아마도 발화자는 원치 않았을 범위까지 퍼져있는 일도 흔하고, 본인이 몰라서 스트레스를 안 받을 뿐이지 비밀의 내용을 다들 알고 그걸 아는 사람들끼리 그거 가지고 이리저리 품평을 하고 있는 일도.... 퍼져서는 안 될 이야기는 아예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 세상에 믿을 놈같은 건 없어. 있더라도 그 믿을 놈에게마저도 말하지 않는 게 안전해! 혹시나 오늘 나에게 뭔가를 털어놓은 경우처럼, 말했는데 상대가 함구해주고 절대 말하지 않아주는 그런 사람일 수도 있잖아? ... 그런 확률에 미래를 걸면 안 되지. 뭘믿고 이렇게 나이브하게 자기의 치부가 될 수 있는 걸 말해주냐. 그런 치부이자 비밀일수록 말하고 싶은 욕구도 크다는 건 안다. 누군가에게 말하고 이해받고 싶거나, 이렇다 할 답을 듣지 못하더라도 상담을 청하고 의논할 수 있는 분위기나 시간이라도 필요했겠지. 자기도 비밀로 간직하고 있기 답답하고 너무나도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어서 말을 꺼낸 거라지만, 바로 그래서 그걸 들은 누군가도 그걸 다른 사람에게 말하고 싶어하는 법이다. 세상엔 평범하게 선량한 사람도 많지만, 바로 그 사람들이 악의없이 경솔하게 사람을 상처주는 일들을 하니까.

+

아주 영악하고 못됐고 남 괴롭히고 악질적인 행동 다 하는 10대도 이런 점에서는 비슷하게 나이브하다. 자기의 약점이 될 수 있는 걸 잘 나불거리거든 (...)


덧글

  • freeverse 2018/12/09 09:46 # 답글

    아니...이게 웃을 일은 아닌거 같은데 마지막 +부분에서 갑자기 빵터졌네요 ㅎㅎ
  • 히요 2018/12/10 11:52 #

    착하든 못됐든 사람에 대한 경계가 없는 나이브함은 매한가지입니다..... 막 사고 치고 자퇴하는 애들도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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