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

저출산문제의 흑백논리는 이렇다. 낳아야 된다는 쪽은 ‘안 낳으면 나라 망한다’, 반대쪽은 ‘안 낳아도 나라 안 망한다’. 명쾌하게 둘 중 하나가 정답이면 얼마나 좋겠냐만 세상은 언제나 고구마 백개에 가깝다.

만약 출산율이 2.1% 이상으로 쭉 유지가 되어서 인구절벽도 없고 고령화사회 문제도 없고 인구변동에 대해 대비할 필요가 없어지면 사회문화적·경제적·정치적으로 딱히 혼란이 있을 게 없으므로 안정적인 국가 유지가 가능하다. 이건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럼 출산율이 그 이하로, 특히 한국처럼 급격하게 떨어지면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지를 봐야 하는데, 이걸 ‘망한다’로 퉁치면 거짓말이다. 당연한 게, 나라로서의 한국은 망하지 않는다. 다만 사회문화적 경제적 정치적 혼란과 비용이 발생할 뿐이다. 즉 저출산을 벗어나야 하고 출산율을 올리자는 얘기는 이 혼란과 비용의 규모를 줄이자는 게 목적이지 나라가 망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출산율이 급격하게 떨어진다는 건 저 혼란과 비용을 초래하는 충격또한 그만큼 빠르고 크다는 의미이다. 이미 아동용품이나 의류를 파는 회사들은 매출이 격감하고 있고, 교육수요도 확확 떨어진다. 노동인구가 줄어든다고 해서 일자리가 그 노동인구에게 1:1로 돌아갈 거라고 믿는 건 바보고 -_-;;; 기업들이 기술을 통해 노동생산성을 높이고 노동자를 덜 고용하는 방향으로 시스템을 바꿀 것인데, 모두가 고급인력이 될 수는 없으니 남는 일자리는 생산성향상 투자가 들어가지 않는 3D업종과 단순서비스, 단순노동직이 될 가능성이 더 크다. 노동인구가 줄어들고 남은 일자리가 저소득직종으로 바뀔수록 그들이 내는 세금의 총액도 줄어들테고, (이러면 당연히 소비자/구매자로서의 입지도 줄어들 것이고 – 이와 연결된 판매자들도 다함께 어려워짐) 그럼에도 경제성장이 그대로라면 이익은 해외시장을 상대하는 기업이 올리고 있다는 것인데, 이 이익을 정부가 많이 걷어서 국민들에게 분배할 수 있느냐가 문제다. 선거자금이 기업에서 나올텐데 기업에게서 많이 걷어서 복지를 높이는 방향의 정치적 변화를 정치인이 주도할 수 있을까? 큰 기업들과 해외를 시장으로 하는 회사들은 살아남는다 치더라도 국내 소비자를 상대로 장사하는 곳들은 소비자가 될 인구 자체가 감소하고 그들의 소득까지 감소하니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인구변화의 영향을 극복할만한 생산성을 유지한 기업들을 제외한 모든 국민이 결국 새로운 인구구성에 맞는 구조조정을 강제로, 자연적으로, 망해가면서 새로 적응해야 한다는 얘기다. 정부는 그 모든 혼란을 수습해야 하는데 인구가 감소하니 세금 낼 사람은 줄어드는 상태로 그 많은 비용을 치러야 한다. 외국인 노동자를 받아들이는 것도 해결이 안 되는 게, 외국인 노동자는 벌어서 고향의 가족에 돈을 부치지 한국에서 한국 소비자로서 소비하지 않는다. 이민을 대량으로 받는 것밖에 방법이 없는데, 그러면 이제 사회문화적 갈등이 폭발할 차례다. 한국에는 거의 한국인만 살아서 인종차별문제가 별로 없지만, 그렇기 때문에 외국인을 만났을 때 인종차별과 외국인차별이 상당히 극심하다. 외국인 이민자를 많이 받고 그들과 한국인이 한 동네에서 잘 어울려 살면 문제가 없겠지만, 이미 조선족 문제만 봐도 알듯이 사람들은 실제 범죄율 통계를 보지도 않고 범죄는 다 조선족이 저지르는 것처럼 생각하고, 난민이 온다 그러면 난민이 모든 범죄의 원흉일거라고 생각한다. 외국인 이민노동자들이 많이 이주해오면 분명히 같이 섞여 살기보다는 인종차별 때문이든 외국인혐오로 불안을 느껴서든 동질적인 민족집단끼리 모여 살려는 현상이 나타날테고, 국내에 온 이민자집단이 자기들끼리 마을을 이루어 살 경우 이 나라의 문화에는 더더욱 동화되지 않는다. 그러면 당연히 민족간/문화간 갈등은 더 심해지고, 문화적 동질성에 근거를 둔 합의와 질서(법을 포함)는 도전받게 된다. 인종차별은 단순히 기분나쁜 수준이 아니라 적대인종에 대한 폭력사건과 폭동, 테러로 이어질 수도 있고, 그 때문에 다시 민족간 적대감을 일으킬 수도 있다. 만약 한국인들이 열린 마음으로 다 받아들인다고 할지라도 무슬림들이 대거 이민해오는 경우에는 필연적으로 무슬림과 비무슬림들간에 발생하는 각종 갈등들이 한국에서도 발생할 것이다. 이민이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다른 문제들을 발생시킬 것이다. 어느 것 하나, 갈등과 비용을 낳지 않는 대안은 없다.

출산율을 당장 2.1%로 올릴 방법은 없지만, 혼란과 갈등과 비용을 그나마 좀 완만하게 겪고자 한다면 출산율이 더 급격하게 떨어지는 건 막거나, 조금이라도 올리도록 정책적으로 애를 쓰는 게 도움이 된다. 그러니 국가와 사회는 출산율을 제고하려고 노력한다. 이것 자체에 대해서도 반감을 가진 사람들이 정말 많다. 낳든 말든 제발 개인의 선택으로 냅두라는 것이다. 그런데 국가를 운영하는 집단이 다가올 충격을 알면서 냅두면 그게 더 미친짓이 아닐까? 하물며 지금 아이를 안 낳는 사람들이 모두 개인 선택으로 낳지 않겠다고 결정한 게 아니며, 결혼해 아이 낳고 키우고 싶어도 여건이 힘들어 포기한 사람이 매우 많다. 그들런 이들이 다수 있는 걸 알면서도 개인의 선택이고 알아서 포기한 것이니 놔두는 게 옳을까? 현재 우리나라가 아이를 낳고 키우기 용이한 환경이 아니고, 저출산정책의 다수는 낳고 키우는 과정을 경제적으로 도와주는 것들인데, 이걸 하지말고 냅두라는 건 낳고 고생하며 키우는 사람들이 계속 혼자 고생하도록 놔두라는 소리가 된다. 어느 모로나 저출산 정책을 하지 말라고 요구할 근거가 없다.

국가가 출산율을 높이려고 애쓰는 걸 사람들이 싫어하는 이유는, ‘낳으라고 강요하는 것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서’이다. 물론 강요는 나쁘다. 국가에 무슨 혼란과 충격이 어떻게 오든 사회가 어떻게 혼란해지든 구조조정이 되든 그것과 상관없이 한 개인이 혼인을 할 지 아이를 낳을지는 오로지 그 개인이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 것이 맞다. 그 개인에게 ‘낳으라’고 잔소리를 하는 오지랖 넓은 한국인들이 너무 많아서 짜증이 나는 것은 이해하지만, 차우셰스쿠처럼 강제로 낳게 만드는 정책도 아니고, 지금 한국 환경에서의 출산장려정책은 해야 할 일이 맞다. 사실 이건 우리나라 국민들이 의외로 굉장히 국가주의적이고 충성스러운 국민들이라서 생기는 문제다. 국가에 출산율 증가가 필요하고 출산율 느는 게 나라를 위해 좋은 일이란 게 확실하니까, 충성스런 대한민국 국민들은 남들에게 애국하라고 (=애낳으라고) 압박을 넣고 다니는 것이다. 만약 한국인 다수가 자유주의자였다면, 그래서 ‘그래 출산율이 느는 게 사회 전체에는 좋은 일이니까 느는 게 좋겠지만, 그래도 낳는 건 개인 선택이지’ 하는 분위기였다면, 국가나 공공기관이 출산율을 제고하려는 정책을 펴는 것 자체까지 반대하진 않았을 것이다.

출산율을 사회문화경제적 환경 때문에 낮아진 거라 뭘 어찌한다 한들 확 오르기는 어렵다. 다만 효과적인 정책을 잘 편다면, 안 낳을 사람이 낳게 되고, 하나 낳을 사람이 둘 낳게 하고, 둘 낳은 사람이 덜 후회하고 잘 키우는 환경이 된다면, 없는 것보단 나은 일이다. 그런 효과가 거의 없다 할지라도 아예 손놓아도 되는 영역도 아니다. 결혼하고 아이낳고 살고 싶어하는 욕망이 전반적으로 없어진 게 아니라, 현실적 제약 때문에 포기를 한 사람들도 엄청 많으니, 최소한 낳고 싶은 사람들만이라도 외부적 이유 때문에 포기하진 않도록 계속 노력해야 될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출산이 유지된다 한들 국가로서의 한국은 망하지 않는다. 다만 여러 가지 사회적 구조조정을 가혹하게 거치게 될 뿐이다. 나라가 망하느냐 안 망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인구가 갑자기 줄어들어서 발생할 문제를 어떻게 덜 가혹하게 치러내느냐가 논의의 중심이어야 한다.

갑자기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어제 토요일자 경향의 인구 줄면 경제 망할까? 100년 전부터 ‘사멸’ 걱정한 독일을 보라 라는 기사를 읽고 기가 차서 -_-..........................

중간에 [ 지난 6월 한국에서 열린 인구학회 학술세미나에서 독일의 인구학자 베른하르트 코펜 교수(코블렌츠대학)는 “인구축소(decline)에 적응하기 위한 계획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개별 시민을 직접 겨냥해 (그들의 삶에) 개입하려는 인구정책은 현재 독일에 없다”고도 했다. ] 이런 문단이 있는데, 지금 우리가 논의해야 할 것은 바로 저 “인구축소에 적응하기 위한 계획” 이다. 그런데 이 커버스토리의 주 내용은 1) 나라 안 망한다 2) 그러니 저출산 해소 정책을 쓰지 말라는 것이다. 그리고 결론은 이민이 대안임. 와 대박 명쾌하고 단순하네... 쩔어주네 진짜.... 경향신문 답게, 애 낳으라는 어른들의 잔소리가 짜증나는 30대가 읽고 즐거워할 관점에서만 기사를 작성해 놓았다. 정체성 확실하시네 정말.

덧글

댓글 입력 영역


Dragon Cave

Adopt one today!

Adopt one today!

Adopt one to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