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개성공단이 생긴 이래로 내가 원하는, 그리고 내가 예상하는 통일의 순서는 늘 비슷하다.

북한이 세습왕조국가로든 공산주의독재국가로든 그 체제로 오래 유지하기 힘들 것은 자명하고, 정부가 무력화되고 통제에 공백이 생기는 때가 올 것이다. 문제는 그 때 중국이 의지할 나라가 오로지 중국 뿐일 것이냐, 아니면 남한과 미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에도 의지할 수 있느냐다. 모두와 적대적인 관계인 채 중국에게만 의존한 채로 망해버리면 중국이 북한을 흡수할 위험이 있다. 중국이 영토욕심 없는 나라도 아니고, 도와줄 나라도 없고 정부는 공백인 고립된 지역을 그냥 수수방관 하리라 믿기는 어렵다. 그렇게 되면 남한 입장에서도 (역사적이고 민족적인 가치와 감상을 빼더라도) 북한 영토와 2000만 인구의 시장이 같이 날아가는 셈이다. 하지만 북한 지배층도 그것을 원할 것 같지는 않은 게, 북한 지배층이 그런 상태에서 중국 지배층에게 딜을 요구할 입장이 안 되고 자기 지위도 유지하기 어려울 테니까. 남한과 정치적으로도 적대적인 관계를 풀고, 경제적으로도 협력을 할 수 있고, 원조를 부탁하고 받을 수 있게 된다면, 만약 북한 정부가 더이상 예전처럼 북한지역을 통제할 수 없게 될 때에도 남한과는 딜을 할 수 있다. 남한 정치지도층과 북한 정치지도층은 명목상으로는 동등한 관계이다. 지배층이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기도 더 낫다. 지금 보듯이 남한과 잘 지내려면 미국과도 우호적인 관계를 맺는 게 필요하고, 남한-미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 정상적인 국가들과 잘 지내는 상황에서는 북한정부가 권력이 약해진다 한들 중국의 위협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중국이 대놓고 침략전쟁을 벌일 건 아니니까. 남한-미국과 잘 지내고 중국에 의존할 필요가 없어지면 경제적 개방을 할 명목도 훨씬 그럴싸해 진다. 핵과 군사적인 문제를 폐기하고 조절해준다는 명목으로 그것을 딜로 하나씩 개방하거나 경제교류를 늘리면 되니까. 개성공단처럼 서로의 경제에 이익이 되는 지역을 아주아주아아주 많이 만들면, 냉전 분위기가 되거나 그것을 폐쇄하는 게 오히려 북한 스스로에게 큰 손해가 된다. 겉으로 보기에 서로에게 윈윈인 것처럼 점점 개방시키고 경제협력관계를 만들면, 북한도 남한이 아닌 다른 나라와 그걸 할 여건은 아니므로 (주변 국가가 중국, 러시아, 일본이라...) 남한과 경제교류가 강화되는 방향이 된다. 미국과 뭘 할래도 당연히 남한이 중계역으로라도 끼이기 마련이고. 언어로도 문화로도 민족적 유대감(추상적인 것 말고, 다른 민족과 일할 때만큼의 갈등-인종차별적인 것-은 없다는 의미로)으로도 경제적 협력은 타국끼리 하는 것보다 안정적으로 진행될 수 있다. 경제적으로 서로가 안 망하는게 서로에게 이익이 되고 나면 전쟁을 할 이유가 없어진다. 전쟁의 야욕은 전쟁을 했을 때 최소한 자신에게는 이익이 있을 때라야 생기는 것이니까. 기업들이 공장을 북한에 세우면 남한보다 임대료/임금에서도 이익이 될 테고, 해외에 세우는 것보다 물류에서도 비용이 덜 들 것이고, 그만큼 사이가 평범하게 좋아지면 북한에서 건설 및 여러 개발을 해야 할 때 남한의 기업들이 일을 맡을 수도 있겠고, 서로 평범한 이웃나라가 되어버리면 비자를 받아 여행, 교육, 노동을 위한 이민도 가능해질 수 있다. 연방제나 거의 다름없을 정도로 경제적으로 연결되고 사람들이 교류하게 된 다음에 정치적으로 연방제를 이루면, 어차피 서로에게 군사적 행동을 해봐야 이득이 될 게 없으니까 두 나라가 하나의 United Korea로서 하나의 군대를 지닌 두 개의 주로서 존재하면 될 것이다. 당분간은 남한정부가 외교에서 메인을 맡겠지만 나중엔 북한 주 정부와 남한 주 정부와 연방국 중앙 정부를 따로 선출해도 될 것이고. 연방제로만 존재해도 전쟁걱정 할 거 없고 영토 뺏길 걱정도 없고 8천만명 규모의 내수시장도 확보되니 그 정도면 충분하다. 그 이상의 통일은 하면 좋고 안 해도 되고. 서로 여행이 가능하면 이산가족도 언제든 만날 수 있고, 이민이 가능하면 아예 같이 살 수도 있을테니 그 문제도 없어질 것이다. 내가 바라는 두 나라의 미래는 이렇다. 가장 중요한 건 1) 전쟁을 할 이유가 없어지고 2) 북한이 중국의 영향력에 지배받지 않은 채 남한을 통해 세계경제에 합류하며 3) 결과적으로 남북 영토와 인구가 하나의 시장이 되고 하나의 외교단위가 되는 것이다. 지금은 이런 식의 진행을 현실적으로도 꽤 기대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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