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변호 How to Live

대충 중학생 때까지. 내가 제일 싫어했던 기분은 억울함이었다. 다른 부정적 감정보다, 억울할 때 제일 빨리 눈물이 나왔다. 억울하면 자기변호와 해명을 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자기변호와 해명에 성공하더라도, 이건 내가 타인에게 '난 잘못이 없어' 라고 주장하고 타인이 내게 '그래 너는 잘못한 게 없구나' 라고 인정해주는 것 뿐이다. 그것이 자신에게 약간의 위로가 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경험상 대개 더 넓은 관점에서는 좋은 결과를 낳지는 않았다. 일이 잘 된 경우엔 억울할 게 없고, 보통 뭔가 일이 잘못된 경우에 억울할 게 생기는데, 내 잘못이 아니라고 인정받고 나면 나만 해방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이 잘못된 건 결국 다른 누군가의 탓이 된다. 내가 직접적으로 남탓을 하지 않더라도, 내가 나를 변호하는 데 노력하고 나를 보호하는 데 성공하면 결국 '일단 내 탓은 아님' 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걸 깨닫게 된 때부터 나는 오해를 받더라도 나를 위한 해명에 애쓰지는 않게 되었다. 상대방이 나의 해명을 듣고 싶어하면 해명해도, 내가 나를 인정받고 내 잘못이 아님을 주장하고 싶어서 하는 해명은 잘 하지 않게 되었다. 나를 위한 것일수록 그것은 자칫하면 남에게 부담을 떠넘기는 상황을 낳는다. 의도하지 않았어도. 내가 정말 선한 의도로 최선을 다했는데도 결과는 틀어질 수 있다. 관련자 모두가 좋은 의도로 최선을 다했어도, 누구하나의 잘못 없이도 일이란 건 사소한 요소로도 틀어지기 마련이다. 그럴 때 내 의도가 선했고 최선을 다했으니 나는 잘못이 없다는 방향으로 이야기를 끌어가기보다는 그 잘못된 결과를 어떻게 '같이' 개선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선호한다. 혹시 상대방이 진짜 잘못을 했고 잘못된 결과에 책임이 있더라도, 자기 탓이라고 미안해하거나 위축되지 않도록 '우리 공동의 일'로 만들고 싶다. 왜냐고 묻는다면 그게 역지사지이고 황금률이기 때문이다. 누가 나에게 그렇게 해주면 좋을 것이기 때문에 나도 그렇게 하고 싶다. 경험으로도 그렇게 했을 때 더 큰 관점에서 더 좋은 결과가 나왔었다.

나는 나름의 노력을 하고, 좋은 의도를 가지고 행동하지만, 내가 최선을 다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아니라 적당히 즐거울 만큼만 노력하는 사람이라서. 나는 내가 노력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 노력이 어떤 것인지도 사람마다 기준이 다를 것이다. 누군가에겐 그건 노력도 아니고, 누군가에겐 대단한 노력일 수도 있다. 애초에 서로 노력해야만 되는 관계라면 피곤한 것일 수도 있다. 적당히만 노력해도 잘 굴러가는 관계가 제일 좋지 않을까? 그래서 내가 혹은 상대가 뭘 했든, 상황이 어찌 되었든, 나는 누굴 탓하고 싶지 않다. 누가 잘했고 누가 못했는지 가르고 싶지도 않다. 다음에 더 좋은 결과를 낳기 위한 대화가 아니라면 다 부질없지 않을까? 나처럼 자기변호에 열올리던 사람도 세월과 경험을 거치면 이렇게 되기도 한다.

덧글

  • 2018/10/04 16:12 # 답글 비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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