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일기 Real Situation

1.
양육가설을 약 330쪽까지 읽은 결론. 호잉이는 아직 자기를 범주화할 다른 집단이 없으므로 지금까지는 나랑 아즈 집단의 규범을 따르느냐 울 엄마아빠 집단의 규범을 따르느냐를 선택하는 상태고, 나와 아즈가 일종의 '집 밖 규범'의 지위를 지닌 것 같다. 그러니까 보통 아이들이 집 안 규범(부모의 문화)보다 집 밖의 규범(주로 어린이집)에 더 강한 영향을 받듯, 호잉이는 우리 부모님과 있을 때와 우리와 있을 때가 다르고 우리와 있을 때엔 우리 부모님과 있을 때의 언행과 코드를 싹 숨긴다. 마치 어린이집에 가면 집에서와 전혀 다른 아이가 되고 선생님 말만 잘듣는 것처럼, 호잉이는 우리집에 왔을 때 우리가 원하는 훌륭한 행동거지를 거의 다 따르고 우리의 말을 아주 잘 듣는다. 우리 부모님께는 훨씬 날것다운 행동을 한다.

그리고 우리 집에서도 우리와 자신보다는 자기가 좋아하는 게임을 다루는 유튜버와 자신이 더 가깝다고 여기는 듯하다. 내 말투의 영향을 많이 받지만, 나와 대화하거나 내 말을 듣는 시간보다 유튜버의 말을 듣고 따라하는 시간이 더 길고, 관심사도 그쪽과 일치하다보니 말투나 어휘가 유튜버를 따라간다. 그러나 나 때문에 무엇이 더 정제된/예의바른/사회적으로 수용되는 언어이고 무엇이 날것의 언어인지에 대한 구분을 하는 것 같다.

2.
알라딘 중고서점에 다녀왔다. 이사한 집에서 아주 가까워서 좋다. 다음엔 호잉이도 데려와서 그림책을 고르게 해줘야겠다.

책을 읽을 수 있게 어린이용/어른용 책걸상이 비치돼 있었다. 어른용에는 충전선을 꽂을 잭과 콘센트까지 여럿 설치 돼 있었다. 책 읽기 참 쾌적한 분위기였다. 필요하던 참이라 배트맨 폰 거치대 하나 사고, «상인 이야기 - 인의와 실리를 좇아 천하를 밟은 중국 상인사» 와, «거상, 전국 상권을 장악하다», «혼인과 연애의 풍속도» 이렇게 세 권을 샀다. 이런 미시경제사, 문화사, 생활사를 담은 역사책 좋아한다. 서점에서 책상 앞에 앉아 조금 읽다가 커피숍으로 이동했다.

3.
스타벅스에 와서, 밤이니까 잠 잘 때 방해되지 않게 커피 말고, 주스류는 달기도 하고 당분이니까 말고, 차 종류 중에서 시도한 적 없는 걸 골라보자 하고 얼그레이티 차가운 걸로 주문했다. 깔끔담백한 게 맘에 드는데, 검색해보니 이것도 카페인 별표 5개 이상이네^^;; 스타벅스 표기상 5개 이상인 건 카페인 60mg이상이라는 뜻. 에이 몰라.

4.
몬헌은... 내가 게임을 잘만 했으면 재미가 있었을 게임인데 내가 너무 못해서 재미 없고 힘들다. 같이 하는 건 너무 즐거웠는데 그래도 나 때문에 퀘스트를 실패할까봐 (멤버 전원 합쳐 세 번 사망하면 실패) 걱정도 되고, 다같이 하는 건데 누구 잘못으로든 실패하는 건 싫으니까 그 전에 내가 강해져서 빨리 몬스터를 뚝딱 때려잡고 싶기도 하고... 사실 어느 정도 잘 만든 게임이면 뭐든간에 유저가 잘 하면 재밌고 못 하면 재미가 없다. 오버워치도 그나마 친해진 사람들 사이에선 내가 못하는 편이 아니니까 재밌게 하는 거지 게임 센스가 없거나 실력이 없어서 같이 놀 때 방해가 되면 어찌 되는지는 뻔한지라.

몬헌도 공부해야지. 무기 강화, 갑옷 강화를 열심히 알아놓고 파워업부터 해야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푸케푸케 너무 정신나간 것처럼 생겼고 독 혀 너무 징그러워! 쿠루루야크는 귀엽다. 돌멩이 들고 던질 땐 오 똑똑해 귀여워 이런 느낌. 안쟈나프는 볼 때마다 내 심장을 훅 떨어뜨리는 느낌. 볼보로스는 틀니 아래쪽처럼 생겨서 웃긴데 실은 웃을 일이 아닌 게 나 이거 잡을 차례다...-_-

무기는 활 사용 중. 날아가도 쏠 수 있어서 좋고, 근접이 아니니까 우리편 근접무기에 후드려맞지 않아서 좋다. 이거 우리편 무기에도 맞게 설정된 거 넘 웃긴다 ㅋㅋㅋㅋ 우리편을 때리지 않게 조심.

아즈는 이걸 마영전 첫 버전과 비슷한 게임이라고 내게 소개했다. 내가 마영전은 참 좋아했었다. 그 때 유비트를 만나는 바람에 몇 주 하지도 않고 접었지만, 잘만 한다면 이런 종류의 게임은 나름 취향에 맞다.

5.
아까 호잉이 손에 뭐 묻은 거 씻어준다고 싱크대 설거지통에 물 받으면서 퐁퐁으로 거품 내 씻었는데, 호잉이 왈

"물을 튼 채 거품을 내면 에너지가 낭비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즈도 나도 빵터짐 아니 어디서 이런 귀엽고 기특한 말을 배워왔어!

"어디서 배웠어?"
"할머니가 말해줬어요. 거품을 내는데 물을 틀어 놓으면 에너지가 낭비됩니다."
"으응. 맞아요. 잘 배웠네. 지금은 설거지통에 물이랑 거품을 받고 있고, 손 씻고 나면 이걸로 설거지를 할 거라서 괜찮습니다. 여기 바닥에 그냥 물을 틀어서 흘려버리면 그건 에너지 낭비라서 그러면 안 되겠지요."

6.
양육가설에서 누누히 강조하는 게, 언어는 부모의 것을 배우는 게 아니라 자기가 속한다고 범주화한 집단의 것을 배운다는 거였다. 호잉이에겐 그것이 내 말투거나 유튜버 말투다. 그걸 잘 알 수 있는 현상이 사투리다. 우리 부모님과 지내는 시간이 가장 길고, 우리 부모님은 심한 부산사투리를 쓰시는데, 호잉이는 사투리를 다 알아 들으면서도 본인은 전혀 쓰지 않는다. 나랑 아즈가 사투리를 쓰지 않고, 유튜버들도 안 쓰니까. 언젠가 호잉이에게 '밥 뭇나' 라는 말을 아냐고 물었더니 '할머니만 그렇게 말해' 라고 대답한 적이 있다. 여러 가지 사투리를 물어보면 뜻도 다 알고 할머니 할아버지만 그렇게 쓴다고 대답한다. 본인은 사투리를 익혀야 할 말로 인식하지 않는다는 게 티가 난다.

7.
최근 신기했던 건 아즈의 사투리. 나랑 있을 때는 사투리를 전혀 쓰지 않고 내 말투와 다를 바가 없다. 밥 먹었어? 저녁 뭐 먹을까? 유부초밥 만들어 줄게. 물김치만 꺼내 줄래? 응 그럼 설거지는 내가 할게. 우리의 대화는 약간의 부산 억양이 있는 표준어 말투이다. 그런데 아즈의 오랜 친구랑 셋이서 회를 먹으러 갔을 때 깜짝 놀랐다. 그 친구는 대구 출신으로 엄청 센 경북사투리를 구사하는데, 아즈도 똑같이 엄청 센 경남사투리를 구사하는 것이었다. 아즈가 그렇게 심한 사투리 쓰는 것 첨 봐!!! 시어머니와 있을 때 몇 번 사투리 쓰는 걸 본 적은 있어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나중에 신기해서 물어봤다.

"이렇게 사투리 심하게 말하기도 하는 줄 몰랐어. 왜 나랑은 사투리를 안 써?"
"히요한테 사투리로 말하면... 너무 반말하는 느낌이라서 그래. 너무 막 말하는 거 같잖아."
"응? 표준어 반말보다 사투리 반말이 더 반말같아?"
"응. 그렇지 않아?"

그러고보니 그렇긴 해. `밥 먹었어?` 보다 `밥뭇나!` 가 더 투박하고 거친 반말같지. `그건 왜 사게?` 는 괜찮지만 `그거는 만다 사노?` 하면 시비거는 것 같지 ㅋㅋㅋㅋㅋㅋㅋ 나랑 거의 나이차 의식하지 않고 지내지만 그래도 아즈는 기본적으로 나를 존중하고 존경하는(!) 부분이 있고, 사투리로 말하면 너무 막 대하는 느낌이 들어서 표준어 반말을 쓰는 게 일종의 `친밀한 존대`의 역할을 하는 거였다.

아즈의 가장 편한 언어는 경남사투리, 호잉이의 가장 편한 언어는 유튜버 도티말투 ㅋㅋㅋ 인데 둘 다 나와 함께 우리 집에 있을 때만 나처럼 부산 억양이 약간 들어간 표준어 반말-해요체-합쇼체 혼합형을 쓴다. 내가 바로 우리집의 기준이로다....(...)

8.
어제 저녁 8시도 안 되어서 내가 피곤해 잠들자 아즈가 안방 불을 꺼주고 거실도 조명을 어둡게 해줬다.

"아빠 왜 불 이렇게 해?"
"엄마 자거든."
"엄마 자? 그럼 엄마 자는데 우리는 왜 안 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는야 우리집의 기준이로다.

9.
이걸 조각조각 편집해서 how to live와 책관련, Lamp, 게임, 언어/말/맞춤법 등의 카테고리로 따로 글 올려 분류하고 싶은 맘이 들었으나 귀찮은 고로 한덩어리로 올림. 이런 거 신경쓰다간 글 올리는 게 불필요하게 번거로워진다. 중요한 건 쓰는 거지 분류가 아님! 이라고 스스로에게 설득하는 중.

10.
그러고보니 나는 화가 나거나 심하게 지치거나 짜증이 나거나 당황했을 때 부산사투리를 쓴다. ㅋㅋㅋㅋㅋㅋㅋ 몬헌하다가 혹은 오버워치에서 브리기테에게 당하고 빡치면 부산사투리 나옴.

덧글

  • 2018/08/13 10:56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8/08/19 21:46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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