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무진 책 관련

『테무진 to the 칸』 홍대선 / 생각비행

배경이 되는 시대와 문화가 낯설어서 처음 50여 페이지는 정말 안 읽혔다. 이후 100여 페이지에선 등장 인물과 용어와 지명과 관습 등등이 통째로 헷갈려서 아예 네이버 메모창을 켜놓고 요약을 하면서 읽었다. 중간쯤부터 문맹의 야만인인 13세기 몽골의 테무진이 보여주는, 그 시대 그 문화 답지 않은 특이한 면모에 반하기 시작했다. 그는 문화와 제도와 관습을 넘어 한 사람을 그 사람으로 볼 줄 알았고, 양심이 있고 염치가 있으며 받은 것과 갚을 것을 생각할 줄 알았다. 배신을 하지 않고, 배신당해도 배신한 당사자가 도와달라 청하면 몇 번이고 돕고 배신당하고 도왔다. 그것이 자신이 일반 대중들로부터 지지받는, 자신을 지켜주는 정치적 가치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테무진은 약속은 반드시 지키는 인간으로서 살았고, 약속을 책임과 부담으로 진지하게 여겼다. 나였어도 카리스마적이고 천재적인 강한 리더 자무카보다, 범재이되 책임에 대해 신뢰할 수 있는 테무진에게 충성했을 것이다. 내 목숨 하나를 맡기는 게 아니라 내 가족의 생계와 부족의 운명을 모두 맡기고, 내가 죽은 후를 부탁할 수 있는 내 주군으로서는 특히. 테무진이 보여주는 그 시대 답지 않은 태도와 가치와 행동에 끝없이 감탄하며 읽어가다보니 새벽이 깊었다. 자무카에게 크게 패하고 퇴각하면서, 테무진은 자신의 목숨을 미끼로 자기 휘하의 장수, 병사, 모든 백성들을 안전하게 퇴각시키는 결정을 하는데, 그 장면에선 21세기를 사는 내가 다 진짜 테무진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싶어졌다. 모든 것을 잃은 패배한 군주 테무진에게 남은 열 아홉명 장수의 인종, 언어, 종교적 다양성, 그리고 그들이 마지막까지 거기 남은 그 하나의 가치, 발주나 호수를 떠나 처음 만난 부족이 보인 모습, 열 아홉명의 장수를 데리고 진격을 시작할 것이면서 50톤의 전투식량을 준비하는 테무진의 시야, 그 진격 소식에 아무런 사전 연락도 없이 수만명의 장수가 그에게 부족의 운명을 걸고 제각각 참여하는 광경.... 크게 패배한 직후부터의 전개가 모두 감동적이었다. 뒤이어 상세히 설명되는 차키르마우트 전투도 어이가 없을 정도로 엄청나고, 초원이 통일된 후에 테무진이 만든 새로운 국가의 형태는 더 어이가 없을 정도로 진보적인 복지국가였다. 이거 좀, 감동이 아니라 황당할 정도로. 테무진은 코아그친 할머니에 대한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던 그 때 그 모습 그대로 통일된 초원의 군주가 되어 통치했다. 자신에게 생계를 맡긴 백성들은 자기가 책임지고 먹여 살려야 한다는 그 하나의 원칙이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보인다. 한 가족에서 한 나라에 이르기까지. 그 원칙엔 출신도 인종도 원한도 계급도 없다. 어떤 과거나 사연이 있건 자신에게 속한 백성이면, 그들은 모두 먹고 살 수 있어야 한다. 누가 누굴 착취하거나 약탈하는 일 없이. 왜 저자가 테무진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지 있는지, 다 읽고 나면 잘 이해할 수 있다. 완전 재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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