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417 서샘강연기록 기타 감상

지난번 그림책 강연에 대해서 기록 안 해뒀나봐!
자세한 기록은 집에 있는 노트에 있을텐데
어제 가져간 노트에 적은 것만 먼저 정리해 올려야겠다.

2018, 4, 17, 김해 북스타트 '책 읽는 부모 학교' 서천석 샘 강연.

1. 괴물들이 사는 나라

늑대옷은 전통적으로 어른 남성을 상징한다. 맥스가 늑대옷을 입고서 망치를 들고 못을 박는 건 어른으로 대접해달라는 마음을 의미한다. 포크로 개를 쫓는 것도 사냥. 그러나 이 행동들이 부모에게는 말썽으로 보인다. 맥스는 벌로 저녁도 못 먹고 방에 갇힌다. 타임아웃은 아이를 진정시키는 방법으로는 좋지만, 처벌로서는 의미가 없다. 맥스도 방에 갇힌 다음에 반성을 하는 게 아니다. 이 시기 아이들 중에 반성을 하는 아이는 드물다. 아이는 반성하기 어렵다. 엄마가 기대하는 걸 아니까 대답을 잘 할뿐이다. 아이는 길게 생각을 못 하고 금방 딴 생각을 한다. 부모에 대한 원망도 빨리 잊는다. 만약 이걸 잊지 않으면 원망하고 소리지르는 반응을 한다. 아이는 딴 생각, 상상을 통해 방에 갇힌 시간을 재미있게 버틸 수 있다. 타임아웃을 벌로 쓰면 상상력이 좋은 아이일 경우 1분만에 놀고 있다.

그림책에 나오는 '무서우면서 귀여운 괴물'. 아이들과 비슷한 3-4등신의, 어딘가 귀여운 면을 가진 괴물들이 나온다. 그래야 아이들이 다가가고 싶어지니까. 비슷한 이유로 '곰'도 아이들용 그림책에 자주 등장한다. 맥스는 그 괴물들을, 엄마가 자기를 보던 표정으로 바라본다. 맥스가 괴물들을 꼼짝 못하게 만드는 마법의 말은 "조용히 해!" 이것 역시 엄마에게서 듣던 말이다. 맥스는 괴물나라의 왕이 되지만, 괴물들은 맥스를 떠받들면서도 진심으로 충성하기보다는 여러 가지 장난을 치려고 한다. 즉 괴물들도 역시 아이다운 모습을 가지고 있다. 아이들은 이 그림책에서 괴물들의 표정을 보고 다양한 상상을 한다.

맥스는 괴물들에게 밥도 안주고 가서 자라고 한다. (엄마가 맥스에게 했듯이^^)

마지막엔 꽤나 성숙한 표정의 맥스. 엄마도 보고 싶고... 맥스는 괴물들에게 잘 있으라고 하고 섬을 떠난다. 집에 돌아왔을 때, 엄마도 맥스를 내버려두었던 건 아니다. 방에 저녁식사가 차려져 있거든. 맥스는 늑대옷의 모자를 벗는다. 더이상 괴물의 모습을 보일 필요가 없어져서.

아이에게 있는 괴물의 모습은 아이의 생명력이다. 이걸 통해 성장하고 배운다. 지금 당장은 괴물같아 보이더라도 아이에게는 복원력이 있다.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의 선을 그어주는 것은 부모의 역할이지만 '이 행동은 잘못이다' 알려주는 걸 넘어 압박하고 통제하려 드는 것은 잘못이다. 아이의 생명력을 잃게 할 수 있다. 괴물은 충분히 통제되지 않은 미성숙한 자아의 상징이다. 아이가 괴물이 아닌 다른 무엇이 되기 위해서 우선 괴물의 시기를 살아가야 한다.


+ 막간 딴얘기.

초1이 친구관계에서 말이나 대처를 제대로 못할 때, 엄마가 자기 수준에서 가르치면 아이가 잘 배우지 못한다. 초1은 자기 또래 중에서 자기보다 조금 나은 아이에게서 더 잘 배울 수 있다.


2. 세상에서 가장 못된 아이 에드와르도

엄마가 통화하는데 후라이팬과 국자로 일부러 시끄럽게 하고, 엄마가 막내를 돌보는데 둘째를 밀어버리고, 이런 저런 말썽을 부리는 에드와르도. 매번 어른들에게 혼이 난다. 장면이 넘어갈 때마다 실제로 에드와르도는 점점 작게 그려져 있다. 혼이 날수록 점점 작아지는 아이. (서샘이 상담할 때 어떤 아이가 그 점을 언급했다고 한다. 선생님 에드와르도가 점점 작아져요. 저도 혼나면 점점 작아지다가 제가 없어지는 것 같아요, 라고 했다고.)

어느날 에드와르도가 말썽을 부리며 꽃 화분을 발로 찼다. 화분이 날아가 깨지자 그걸 본 지나가는 신사가 '꽃을 참 창의적으로 심는구나!' 라고 칭찬을 한다. 그리고 에드와르도에게 자기 정원에 꽃을 심어보지 않겠냐고 권하고, 꽃을 심어주자 잘 한다고 고맙다고 칭찬을 한다. 에드와르도가 장난을 치다 강에 빠졌을 땐 이웃 아주머니가 옷을 말려 준다고 모두 다림질을 해 준다. 그러고 학교를 가자 선생님은 에드와르도가 깔끔하고 깨끗하고 단정한 차림새로 왔다고 모두의 앞에서 칭찬해주고 아이들도 인정해준다. 학교에서 에드와르도가 말썽을 피우며 후배를 밀어 넘어뜨렸는데, 마침 그 사이에 전등이 떨어진다. 선생님은 에드와르도에게 후배를 구해 주었다며 칭찬을 하고, 동생들을 참 잘 본다며 어린 아이들 몇몇을 돌봐달라고 부탁하고 에드와르도는 그렇게 한다.

잘못을 지적당하는 것으로는 아이가 바뀌지 않고, 칭찬을 반복해 겪으면 아이는 더 잘 변할 수 있다. 잘못을 알고서도 못 고치는 건 아직 고칠 힘, 고칠 능력이 없어서이다. 아이도 알고 있다. 잘못인 줄 아는데 고치지 못해서 아이도 자신을 못났다고 생각하고 속상해한다. 부정적인 부분을 지적하는 걸로는 없어지지 않으니, 긍정적인 행동을 하게 돕고, 긍정적인 피드백을 하고, 칭찬할 걸 만들어주는 게 좋다. 좋은 얘기를 해줄 기회를 만들어주어야 한다.

예시로, 공구를 좋아하는 아이에게 일부러 집 싱크대 문 나사를 약간 풀어놓고, 죄어달라고 부탁을 한다. 그럼 아이는 나사를 죄어주고 부모에게 감사인사와 칭찬을 듣는다. 부모는 또 다른 문의 나사를 풀어놓고 ㅋㅋㅋㅋㅋ 아이에게 부탁하고, 아이는 또 해주고... 이렇게. 좋은 행동을 할 기회를 주고, 칭찬받을 기회를 만들어 주기.

'나도 잘할 수 있는 사람이다, 나도 다른 사람을 만족시킬 수 있다' 이런 자존감이 필요하다. 아이들도 말한다. '나도 좋은 얘기를 들으면 잘 하고 싶어요.'


+ 그림책을 보여주지는 않았지만, 말로 짧게 소개해준 책, '검피 아저씨의 뱃놀이'. 이건 지난 번 강연에서 처음 들었을 때 너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무 맘에 들어서, 아주 잘 기억하고 있는 내용이다. 이번에도 이거에 대해선 메모 하나도 안했지! 왜냐면 전부 기억하거든! 서샘 말까지 다 기억하거든! ㅋㅋㅋㅋㅋㅋ 너무 좋아해서!

검피 아저씨가 배를 띄우는데 닭이 찾아와 태워달라고 한다. 검피 아저씨는 닭에게 장난치면 배가 기울어져 물에 빠질 수 있으니 얌전히 있을 수 있는지 묻고 닭은 당연히 그러겠다고 하고 탄다. 돼지가 와서 태워달라고 하고, 아저씨는 돼지에게 이리저리 움직이면 배가 기울 수 있으니 얌전히 있을 수 있는지 묻고 돼지는 그러겠다고 한다. 다른 동물들도 제각기 타겠다고 하고, 아저씨는 말썽을 피우면 배가 뒤집히고 물에 빠질 수 있으니 장난치지 말라고 말해주고 동물들은 모두 흔쾌히 동의하고 장담한다. 그리고 뱃놀이가 시작되자 동물들은 장난을 치고, 배가 기울어 모두 물에 빠진다.

아저씨는 동물들을 모두 물에서 하나씩 꺼내어 구해주고는, 동물들에게 말한다.

'우리 이제 따뜻한 차와 쿠키를 먹으러 가자'

이게 끝이다. 너무 좋지 않나요? 너무 좋지 않아? 저기서 아무런 잔소리도 구박도 안 하고 야단도 안 치는 검피 아저씨가 너무 좋아!!! 그림책 작가의 의도는 이렇다. 아이들은 물에 빠져 고생하는 걸로 이미 충분히 배웠으며, 어른이 다시 혼을 내며 확인사살할 필요는 없다는 것. 물에 빠져 추위에 떠는 아이들을 챙겨 감싸고 차와 쿠키를 먹고 몸을 녹이면서, 그때 좋게 말해도 교육은 된다. 굳이 물에 빠져 있을 때 '장난치면 배가 뒤집힌다고 아까 말 했잖아! 장난 안 치기로 약속도 했잖아! 이게 뭐니?' 라고 화내는 것이 오히려 교육과 거리가 멀다. 난 지난 번 강연에서 저 이야기를 들은 순간부터 늘 검피 아저씨처럼 살고 싶어한다. 이미 자기 행동으로 나쁜 결과를 얻은 사람에게, 부러 확인사살을 하며 비난할 필요는 없다. 따뜻하게 감싸주고, 기운나게 해주고, 혹여나 말로 된 당부가 필요하다면 그 후에 하면 된다.


+ 막간의 다른 얘기.

- 부모는 아이에게 '올바른 일을 해야 한다'고 말은 해야 하지만, 아이가 올바른 일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큰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다.

- 많은 그림책이 취학전 아동보다는 초등 저학년에게 더 잘 이해되고 적합하다. 현재는 그림책도 선행학습되는 상태다. 예를 들어 초2가 잘 이해할만한 그림책이 6세용으로 나온다.

- 권장도서에도, 어른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내용(지식/정서/음악/세계관)이 많다. 그려지는 풍경이 애들에게 익숙한 장면이 아니라 부모세대의 옛 추억을 비춘다. 아이들에겐 부모의 어릴 때 얘기 같은 건 필요없고 (ㅋㅋㅋㅋㅋ 정답) 아이의 눈에 지금 보이는 세상에 대해 이야기해야 그 책이 아이에게 도움이 된다. 부모는 얘가 지금 어떻게 사는지를 궁금해해야 한다. 부모와 애는 다른 환경에서 살고 있다. 부모와 아이는 동일하게 느끼지 못하는 것이 많다. 우리가 아이에게 영향을 주려면 (우리의 옛 추억을 설명하려 들기 보다는) 우리가 아이를 이해하려 해야 한다. 그림책도 요즘 아이들의 생활이 나오는 책이 좋다. 부모세대의 이야기, 부모가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담긴 책만 주면 아이들은 책에서도 잔소리를 듣는다고 생각하게 되어 책을 멀리하게 될 수 있다.


3. 고릴라

쿨톤의 세련되고 삭막한 부엌 풍경. 아빠는 신문을 보며 아침을 먹고 한나는 신문에 가려 아빠 얼굴도 보지 못한 채 식사하고 있다. 생기있는 색깔은 한나가 입은 빨간 스웨터 뿐. 한나는 아빠에게 놀아달라고 하지만 아빠는 바빠서 집에서도 일을 하고 있다. 한나는 놀자고 조르고 싶지만 또다시 거절당할 게 싫어서 우물쭈물 서 있다. 아빠도 한나를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다. 한나가 고릴라를 좋아하는 걸 알고, 고릴라 인형도 사 주고, 여러 가지를 해주려고 한다. 같이 놀아줄 시간이 없을 뿐. 한나는 아빠가 일하는 동안 텔레비전을 보면서 시간을 보낸다. 티비의 빛이 닿는 공간만이 아늑한 꽃과 나비로 빛나고, 한나는 그 안에 앉아 있다. 그 바깥의 풍경은 무서운 것들로 가득차 있다. 한나에게는 텔레비전만이 유일하게 외로울 때 함께 있어준 친구이다. (이 때 서샘 말씀, 한나가 텔레비전을 많이 본다 한들, 이게 텔레비전 중독일 수 있을까요? 텔레비전은 애착 대상입니다. 요즘 아이들에게 폰이 그래요. 폰 중독이라기보다 폰 애착인 아이들이 많습니다. 오로지 폰만이 아이들에게 놀아주고 많은 것을 해주고 항상 함께 있어 주고 그러거든요. 폰만큼 나한테 많은 걸 해준 게 없다고 해요.)

한나는 아빠가 사준 고릴라 인형을 보지만, 한나는 진짜 고릴라를 보고 싶어한다. 그리고 그날 밤, 고릴라 인형은 점점 커지더니, 진짜 고릴라가 되어 한나를 깨운다. 깜짝 놀란 한나는 이불에서 눈만 빼꼼 내밀어 고릴라를 바라본다. 따뜻한 미소를 짓고, 나비넥타이를 한 고릴라. "한나야, 놀라지 마, 난 널 해치러 온 게 아냐. 동물원에 가고 싶지?" 고릴라는 한나 아빠의 코트를 입고 모자를 쓰고, 한나를 데리고 동물원에 간다. 동물원을 구경하고, 맛있는 것을 먹고 (고릴라 완전 자애로움이 가득한 미소로 한나를 보고 있는데 내가 다 감동함...) 돌아오는 길에 공원에서 한나를 발등에 올려놓고 춤을 추고 (여기서 서샘 말씀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많은 아빠들의 로망이죠, 딸과 춤을 추는 것. 딸들은 싫어합니다. 아빠 냄새나, 아빠 수염 따가워, 그런데 아빠들이 앞에 걸(한나가 원하는 걸 다 들어주는 데이트) 생략하고 여기서부터 하려고 해서 그래요. 앞에거부터 다 하면 자연스럽게 할 수 있습니다. ㅋㅋㅋㅋㅋ) 다시 잠자리에 든 한나에게 고릴라는 "내일 보자" 라고 인사하고 한나는 "정말로?" 라며 놀란다.

다음 날, 아빠는 한나가 좋아하는 동물원에 데리고 가자며 한나를 찾아온다. 한나가 좋아하는 고릴라가 그려진 케익과 카드도 선물한다. 이제는 아빠도 한나처럼 생기넘치는 빨간 스웨터를 입고 있다. 그리고 뒷주머니에 바나나 하나. 서샘이 만난 아이 하나가 이걸 보고 '아빠가 고릴라였던 거에요!' 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다음에 서샘이 해주신 말씀이 넘 마음아프고 중요하다.

'아이는 부모를 포장하고, 어떻게든 좋게 보려고 노력합니다. 학대 수준의 상황에서도 아이들은 부모를 용서하려 해요. 제가 잘못을 해서 화내는 거에요, 부모님 잘못이 아니에요, ... 아이는 부모가 부정적으로 대해도, 다 잊고 용서하고 다시 다가갑니다. 아이는 부모를 좋게 볼 마음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게 사랑해서가 아니에요. 그게 안전하다는 본능에서 그러는 겁니다.'

아빠가 고릴라라고 주장한 아이도, 한나의 아빠는 한나를 사랑하니까 외롭게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고 그래서 고릴라로 나타나 어제 그렇게 한나를 행복하게 해 주었을 거라고 '생각하고 싶은' 것이다. 아빠니까 딸을 사랑할 거라고. 부모가 자식을 사랑할거라고 생각해야 안전하게 느껴지니까.


강연 끝나고 QnA. 이 시간이 되면 나는 뻘쭘해지는데 나는 물을 게 없습니다.... 서샘 말씀을 몇년을 들어왔고 얼마나 많이 텍스트화해서 정리해 두었는데... 심지어 누가 물으면 서샘이 뭐라고 답할 것인지까지 데이터베이스가 쫙 돌아간다고. 물론 그렇게 떠올린, 전에 들은 적 있던 답변보다 플러스 알파로 더 좋은 대답을 해주시니까 매번 듣고 감동하는 것이고!

양보하고 나서 속상한 마음을 말하래도 말하지 않고 어딘가로 가서 숨는 아이에게 어떻게 가르치면 좋을지에 대해 질문하신 분이 있었는데, 서샘 말씀이 너무 좋았다. 속상한 마음을 말하는 게 더 창피해서 싫은 아이가 있을 수 있고, 말하는 걸로 괜찮은 아이가 있을 수 있다, 양보하는 걸로 속상함이 없는 아이도 있고, 그 속상함이 오래가는 아이도 있다, 감정이 빨리 사라지면 속상함을 털어낼 수 있어서 좋지만, 감정이 오래가는 아이도 감정이 깊고 남의 감정을 잘 이해하는 아이로 자랄 가능성이 크니 나름 장점이 있다. 아이가 양보한 후의 속상함을 어떻게 해결할지 부모가 여러 방법으로 시도해보며 거들어주고 도와주는 것은 좋다. 하지만 양보한 후에 속상해하는 걸 부모가 보기 답답해서 그러지 않기를 바라는 거라면 그것은 아이를 돕는 게 아니고 아이의 감정은 이해받지 못한 게 된다. 그리고 이 다음이 진짜 좋은 말.

"잘 생각해보면 우리도(어른도) 비슷한 행동을 합니다. 만약 상황에 떠밀려 양보를 했는데 내가 원치 않는 거였다면 다음 번에는 그 모임에 왠지 가기 싫다든지, 그래서 안 가고, 그러지 않습니까? 아이니까 훨씬 사소하고 작은 일에 그럴 수 있고 부모가 보기엔 답답할 수 있지만, 그 마음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어른은 다만 통제력이 있으니까 아이보다 좀 더 안 그럴 수 있는 거지요."

이런 거!!!! 이게 너무 좋아!!! 아이가 아이라서 유치해보이는 건 드러난 현상이 사소해서 그런 거고, 그 안의 감정 흐름은 어른이랑 별로 안 달라!! 어른이라고 유치한 감정 없는 거 아니다. 다만 사소한 일에 그런 티를 내지 않으려 하고, 그럴 수 있는 통제력이 아이보다 더 클 뿐이다.

질문하신 분은 부모로서 아이의 부정적인 반응을 어떻게 교육하면 좋을까를 물은 것이지만, 서샘은 늘 그렇듯, 아이는 아이 나름대로 그대로 괜찮으며, 부모의 인식을 한 단계 더 수용적인 방식으로 바꾸어주는 답변을 주셨다. 내가 이래서 서샘을 좋아하는 거야 진짜.

여튼 여기까지가 어제 강연에 대한 기록. 끝!

집에 같은 강연 전에 들은 메모 보고 빠진 게 있으면 추가하든가 귀찮으면 안할 수도 있음 ^^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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