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C リボン 2 BOC



세상에.

2010년 이후의 노래들은 아직 앨범을 구입하지 않아서 유투브 범프 계정에 올라오는 뮤직비디오로 듣고 있었다. 가사를 찾은 것도 있고 못 찾은 것도 있어서, 새 노래 중에서 가사 내용을 아는 거라고는 ray, happy, ファイター까지 세 개다. 곡도 좋고 가사도 반쯤은 들려서, 전체 가사를 정말 알고 싶었던 게 リボン이었는데, 그 가사를 오늘 찾았다. 그리고 날 전율하게 만들었지. 이 노래가 갓 나왔을 때 내가 범프오브치킨의 노래를 들으러 다시 돌아온 것도 정말 행운이다. 내 인생엔 ‘좋은 타이밍’이 정말 많은데, 이것도 그 중 하나. 나는 이 노래를 듣기 위해 돌아왔나봐. 아니면, 기왕 돌아올 거라면 돌아오자마자 이 노래를 들으라고 이 때 돌아왔나보다. 아즈가 일본유투브의 인기 영상으로 이게 떴다고 내게 건네주면서 이걸 시작으로 모르는 새 노래들을 다시 듣기 시작했는데...

너무 좋다 어떡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범프에게서 내가 얻고 싶은 메시지를 전부 얻고, 좋아하는 노래를 충분히 듣고 외우고 따라부르고 즐기고, 그리고 서서히 관심이 옅어졌었다. 내 인생의 한 부분과 겹쳤던, 그 때의 범프오브치킨으로 충분했고 내게 새로운 곡들은 마치 숙제처럼, 미뤄두고 싶었고 당장 필요하지도 않았다. 왜 숙제처럼 느껴졌는지도 잘 안다. 후지와라의 곡들은 하나 하나가 내게 강한 충격을 주는 것들이었으니까 쉽게 듣고 소비하고 제낄 수 있는 종류가 아니라서, 무엇이든 좋은 쪽으로든 어쨌든 심력소모를 할 게 뻔하거든. 그리고 언제나 몇년마다 그랬듯, 아마 나는 그 때 새로 열정적으로 빠져들 뭔가를 – 아마도 게임 - 갖고 있었을 것이다.

이하 리본 가사를 아는 사람들만 이해될 이야기. 그리고 팬심에 의한 방언이 쩝니다. 경고했음. 이 아래로는 레알 방언터진 일기임.





후지와라는 인생을 몇 가지 비유로 반복해 노래했는데, 그 중 하나가 폭풍 속을 항해하는 이미지이다. 리본은 sailing day처럼 목숨을 건 도전 중인 게 아니고 그만한 격정을 품은 것도 아니다. 이렇게나 잔잔하고 평화롭게, 거의 성스럽기까지 한 분위기로, 후지와라는 폭풍 속에서 여기까지 왔다고 노래한다. 각자가 지닌 유리구슬은 당연히 가라스노 부르스를 떠오르게 한다. 범프오브치킨의 이름답게, 그 작은 구슬은 용기이고, 내 주머니 속에도 한 사람 분으로 하나 있다고 한다. 애초에 sailing day의 항해도, 그 지도에 적힌 곳에 보물이 꼭 있다는 보장이 있거나, 거기 반드시 도달하기 위해서 가는 게 아니었듯이 리본의 항해도 똑같다. 어디로 가는지 어디까지 왔는지 모르지만, sailing day에서 ‘지도를 들고 배를 띄워 떠나는 것’ 자체가 중요했듯, 리본에서도 ‘태풍 속을 지나며 나아가고 있고 여기까지 온 것’ 자체가 중요하다. 확실하거나 보장된 건 아무 것도 없지만 곁에 있기를 선택했고...

“지금 함께 있으니까 미아가 아냐” <- 여기서 왈칵 울뻔했다.....

예전엔 하나 하나 처음부터 찾아 듣고 후지와라가 노래하는 세계와 이야기를 차근 차근 따라가다가 언젠가부터 놓아버렸다. 이제와서 다시 그 흔적을 처음부터 따라가려니 버거워서, 그냥 내가 모르는 노래기만 하면 아무 거나, 가사 없이도, 그냥 편하게, 최신음악 아무거나 듣고 맘에 들면 계속 듣고 아니면 말듯이, 너무 의미 두지 말고 그냥 듣자고 스스로 다짐했었다. 그래야 들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너무 소중하다고 해서 포장을 뜯지도 않고 상자 속에 넣어만 둔다면, 그건 소중히 하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후지와라는 늘 만나야 헤어지고, 헤어지는 것도 만났다는 증거라고 하는데, 새 노래들이 분명 내게도 소중해질 거라며 아예 시작하지도 않는 건 아이러니하지. 차라리 듣고 보니 별로더라도, 가볍게라도 만나는 게 낫다. 이것도 내 판타지 속에 후지와라를 박제하지 않기 위한 행동이다.

곡 순서도 모르고 의미도 모르면서 아무 거나 듣는 와중에, 그래도 내가 후지와라의 곡들과 목소리와 노래들이 원래 내 취향에 너무 잘 맞으니까 가사를 알든 모르든 정말로 다 좋긴 좋았지만, 그런 내가 길을 잃고 헤매는 미아같다고 생각했다. 정말로 딱 그렇게 생각했다. Orbital Period까지는 정말 확실하게, 그리고 Present, 모터사이클까지도 제대로 따라갔었는데 그 후로 후지와라가 어떤 이야기를 하면서 어떤 길을 걸어갔는지 나는 모르고, 지금 나는 그걸 제대로 되짚어 따라가는 것도 포기했고, 그냥 아무 시점의 아무 노래나 아무렇게나 만나고 있어서, 내가 모르는 후지와라의 새로운 세계를 낯선 거리를 걷듯이 헤매는 미아라고 생각했다. 어쩐지 서먹하고, 미안하고, 아무 말 없이 경청만 하는 화자가 된 기분으로 있었다.

리본에서 후지와라는, 내가 알고 있는 이야기의 시작부터, 그러니까 가라스노 부르스와 작은 용기와 폭풍 속의 항해를 모두 노래하면서, 여기가 어딘지도 어딜 향해 가는지도 모르지만, 곁에 있기를 선택했고 지금 함께 있으니까 미아가 아냐, 라고 노래해주고 있었다. holiday와 메이데이를 각각 처음 들었을 때, 이 사람은 정말 천사나 신이나 뭐 그런 존재가 아닐까 하는 경외감을 가졌었는데 지금 또 그렇다. 타이밍이, 운이, 너무너무 좋아서 그렇다고 해도, 내가 가진 미묘하고 작은 혼란을 ‘리본’은 전부 상냥하고 평화롭게 풀어 노래하며 괜찮다고 말해주고 있으니까. 많이 웃고, 울고, 화내고, 그 모든 일 전부가 음표가 되어 우리를 묶었다고 해줬을 때, 당연히 나도 함께 묶여있었다.


내 마음을 가장 강하게 울린 한 마디. ‘우리들을 묶은 리본은 풀리지 않은 게 아냐, 묶어왔던 거야’ 꼭 범프만이 아니라, 가끔 내가 진짜 개인 일기장에다 끄적이며 소소하게 고민하는 모든 인간관계에서도 이 한마디가 필요했다. 만날 때 묶은 리본이 계속 풀리지 않아서 ‘우리’가 ‘우리’로 남는 게 아니다. 리본은 계속 풀리고, 우리는 계속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잊었다 기억났다 하겠지만, 풀렸더라도 계속 묶어간다면 우리는 리본으로 묶여있는 ‘우리’가 된다. 풀리는 건 문제가 아닌 것이다. 다시 곁에 있기로 선택하고, 다시 리본을 묶는 것이 중요할 뿐. 앞으로가 어찌되든 그것은 모르는 것이다. 지금까지도 폭풍 속에서 여기까지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니까.

1절 가사와 함께 노래를 들으며 나와 범프 사이에 있었던 그간의 단절에 대해 내가 느끼던 미묘한 기분들이 해소되었다면, 2절을 보면서는 내가 속으로 신경쓰던 인간관계에 대한 사소한 고민거리들이 전부 가사 한마디 한마디에 깃드는 것 같았다. 여기는 어디인걸까, 어딜 향해 가는 걸까, 미아가 아니겠지. 태풍 속에서 여기까지 왔어, 만남 후 태어난 빛을 뒤쫓아서, 태풍 속에서 어디까지든 갈거야. 붉은 별과 나란히 어디까지든 갈거야, 라는 노랫말들에.

알사탕의 노래 때와 사실은 똑같은 고민거리다. 나는 진짜 내가 이별하기 싫은 것과 이별하는 걸 수용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니 여전히 ‘알사탕의 노래’에 경외를 가지고 있다. 그 노래의 화자는 사랑하는 사람과 사별을 앞두고도 신에게 빌지 않는다. '영원히 이대로 있고 싶다'는 소망은 달콤하지만 살아있는 인생답지 않은 소망이다. 그런 걸 갈구하지 않겠다고 노래할 수 있는 그 강함에 경외를 느낀다. 나도 물론 어쩔 수 없는 헤어짐 앞에서는 미련을 보이는 성향이 아니지만, 그건 내 의지가 아니라 단념하고 포기하는 것에 가깝다. 사실은 언제나 확실하게 보장된 아름다운 미래를 원하고 있고, 하지만 그런 게 보장되어 있지 않는 쪽이 진짜 살아있는 인생이란 건 알고 있다. 확실하고 아름답게 신이 보장해 줄 수 있다고 해도 그런 건 거부하는 편이 낫다. 진짜 제대로 살아있기 위해서. 후지와라는 늘 그렇게 노래하고, 지금 알게 된 여러 곡에서도 그렇게 그렇게 노래하고 있다. 그런 생각은 들더라. 여전히 그 방향에 대해, 여러 곡에서 계속 다른 형태로 노래하하고 있다는 건 후지와라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인 거 아니겠습니까. 나한테만 어려운 건 아닌거지. 아니면, 후지와라도, 리스너들이 어려워할 것을 알아서 반복적으로 이렇게 응원가가 될 수 있는 노래를 불러주는 것이든가.

‘우리들의 리본은 풀리지 않은 게 아냐, 묶어왔던 거야.’ 이 말이 좋다. 내가 좋아하고 아끼는 모든 사람들, 모든 대상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아름답고 예쁘게 잘 묶였던 리본이 있었다고 해도, 그대로 영원한 건 아니다. 풀리지 않게 하려고 애쓰는 게 오히려 즐겁지 못하다. 풀리면 아깝겠지만, 다시 만나서 또 묶을 수 있다면 즐거울 것이다. 가까이 있다면, 서로 반가운 정도의 기분이라도 든다면, 서툴게 살짝이라도 리본을 다시, 다른 형태로 묶으며 즐거울 수 있다.

만약 다시 만나지 못한다면, flyby를 부르게 되겠지만 말이다. 나는 flyby를 정말 좋아하는데, 이 곡 덕분에 나는 한때 가까웠지만 그 날들이 다 지나버리고 지금은 연락도 되지 않는 사람들을 떠올릴 때, 훨씬 나은 이미지를 가질 수 있게 됐다. 이미 끝나버린 과거의 추억이라며 아쉽게 여기는 대신, 저 먼 궤도 어딘가를 돌고 있는 별들을 향해 flyby처럼 무전을 보내는 이미지를 떠올린다. 수신된다 하더라도 그게 언제인지 알 수 없지만, 이제 그건 ‘아쉬움’이 아니라 꼭 flyby 곡 분위기처럼 ‘실망하지 않는 작은 기대감’이 되어있다. 영원히 없어졌다고 여기는 것과, 76년 뒤 돌아올 혜성을 기다리는 것은 얼마나 다른가. 반드시 온다는 보장이 없더라도, 내가 너를 향해 무전을 보내는 정도의 기대감을 가지고 산다는 게 또 얼마나 좋은가. 리본은 다시 만나면 묶으면 된다.

요즘은 새로 얻게 되는 좋은 사람들을 보면서, 이미 오래고 깊은 관계를 형성한 지인들처럼 되기를 바라곤 한다. 하지만 새로 알게 된 좋은 사람들 중 다수는 아마 곧 시간이 지나면 서로의 삶에서 분리되고, '그때 그런 사람이 있었지', 그런 기억만 남기고 ‘현재’에서 사라질 것이다. 그게 싫다는 생각을 요새 참 많이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아직 ‘처음’의 리본을 묶는 중이면서도 이게 예쁘고 단단하게 잘 묶여서 오래 가기를, 10년간 이어지고 있는 친구들처럼 뿌리내리기를 벌써 바라는 것이다.

Orbital Period를 그 동안에도 늘 간간이 들었는데, 요즘들어 갑자기 내 마음을 강렬히 사로잡는 이유도 아마 이것 때문일 것이다. 지금 내가 The Living Dead와 같은 소망을 갖고 있어서, 그것을 Orbital Period처럼 풀어나가고 싶기 때문에. 아름다운 완성을 바라거나 내 것으로 소유하는 결말을 원하는 대신, 어디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항해에서 곁에 있는 동안은 계속 다시 리본을 묶으면 되는 관계를 지향하고 싶어서. 멀어지더라도 그걸 슬퍼하거나 끝이라고 생각하기보다 flyby가 되고 싶어서. 그러니까 늘 후지와라 노래처럼 살고 싶고 그렇게 살 수 있게 되었는데도, 사람이 소망이 생기면 다시 그 전 단계로 돌아가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후지와라의 응원가가 다시 필요하다. ‘알사탕의 노래’는 아마 앞으로도 계속 내게 경외감을 주겠지. ‘죽지 않는 신이여, 우리는 바라지 않으리 / 이길 수 없는 신이여, 지지 않으리, 바라지 않으리’ 알사탕의 노래는 죽음 앞에서니까 그다지도 불안한 노래였지만, 우리가 평범하게 겪는 '멀어짐'은 대부분 죽음보다는 온건하다. 그러니 그 노래보다는 훨씬 덜 불안하고 덜 어려울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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