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가대와 행자부 Real Situation

1. 서울가요대상에서 스탭모집을 하면서 교통비도 급여도 없고 자원봉사 증명도 발급 안 되며 업무에 따라 공연을 못 볼 수도 있다고 조건을 써 놓았다. 이러고도 사람이 모일 거라고 구인을 한다는 건 가수 팬들 중에 이렇게 해도 혹시나 자기 가수를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희망하는 이들의 노동력을 무상 이용하겠다는 의미이다.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석할 수 있으면 나는 가급적 선의로 해석해보려고 하는 편인데, 이건 달리 생각할 여지가 없다. 팬심을 이용해 무상노동력착취를 도모했던 스포츠서울 측은 누군가 서울시에 민원을 넣어버린 고로 서울시 후원행사였던 게 취소되고 서울시로부터 시정권고를 받아 스탭모집 공고를 취소했다.

2. 28일 행정자치부가 공개한 대한민국출산지도중에 가임기여성지도라는 게 있다. 20-44세 여성이 시도구마다 얼마나 있는지 표시한 지도이다. 양계장이 국내 몇 곳 있고 암탉이 몇 마리인지 표시하는 건 달걀공급을 위해서다. 가임기여성지도 역시 이와 용도가 흡사하다. 임신가능한 여성이 어디어디 있다는 건, 그들을 임신시켜 아이를 뽑아야 한다는 발상을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당연히 수많은 사람들이 반발하고 비판하고 항의했고 현재는 내려갔다. 이것 역시 아무리 좋게 해석하려 해도 부부 혼인 환경 하에서의 출산을 권장하는 문화에서 결혼•출산 적령기의 남녀 분포도가 아니라 '가임여성' 분포도인 이상 이용주체는 남성이고 여성을 사용할 자궁으로 다룬 혐의 이외의 다른 중립적 가치를 읽기 힘들다. 연구나 통계상 정 필요했으면 조사하고 자료를 만들되 공개하지 않고 연구 목적으로만 썼으면 될 일이다.

3. 항의에 의해 폐기되었다는 점에서 그나마 다행이다. 이리 해도 굴하지 않고 유지할 수 있었다면 누군가는 무상착취 당했을 것이고 누군가는 그 지도를 보며 아무렇지 않게 여성 많은 지역을 `출산도구 많은 동네`로  보았을 것이다.

4. 예전에 나도 종종 했고 이번에 나오는 의견들 속에서도 발견되는 말이, `저걸 기획하고 승인하고 단계를 거쳐 실행하기까지 사람이 몇인데 저게 문제가 있단 걸 안 사람이 한 명도 없냐` 이다. 예전에 저 말을 쓸 때는 관련자 전체의 무감함에 경악하는 의미였는데, 요즘은 꼭 그렇진 않겠단 생각이 든다. 이건 최근 읽은 엄기호의 «나는 세상을 리셋하고 싶습니다»에도 잘 설명돼 있다. 만약 내가 서가대 기획자 중 하나거나 행자부 관료 중 하나였다면, 어지간히 힘센 위치가 아니고서야 `스탭 일당 당연히 줘야한다`거나 `이 지도는 제작•공개하면 안 된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예산을 자기가 책임질 수 있는 게 아닌 이상 스탭 일당을 주자고 주장할 수 없다. 돈이 수천에서 억단위로 들어가는 공공사업에 뭘 넣어라 빼라 제안할 수 있는 `입`들도 없다.

한국은 실무자나 하급자의 자유로운 의견제시를 받지도 않거니와 감히 말할 엄두도 못 내게 하며, 말하면 `눈치없고 겁도 없고 사회생활 모르는 무모한 새끼`가 될 수도 있다는 리스크를 개인이 감당해야 한다. 자유로운 의견제시가 가능하고, 제기된 문제를 문제제기자에게 추궁하는 게 아니라 다같이 의논해 해결하는 문화가 있다면 수많은 관련자 중에 누구 하나라도 `이건 문제가 될 것이다` 라고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말하는 놈이 `나대는` 게 되고 모든 책임을 엎어쓴다면, 어차피 문제 생겨도 자기 책임도 아니고 태클 걸어 진행에 차질이 생기면 그게 자기 책임이 되어버리는 구조에서 입을 다무는 게 당연하다. 그렇게 다들 입을 다물면 100명이 관여한다 한들 100개의 뇌가 그 문제에 대해 사고하는 게 아니다. 쓰고보니 «리셋…»보다 «교사도 학교가 두렵다»에 가까운 내용이군.

«리셋…»에서는 이런 설명이 나온다. 현대의 조직에서는 나의 책임이란 게 결과물에 대한 책임이 아니라 자기 동료나 상사에게 민폐끼치지 않을 책임이 되어있다고. 즉 결과물이 좋고 나쁘고는 내 책임이 아니고, 일을 원활히 진행시키지 못해 동료나 상사를 힘들게 하면 그게 내 책임이며 그러지 않는 게 윤리인 것이다. 이런 환경에선 `리스크 때문에 문제를 알면서도 차마 말을 못하는` 게 아니라, 결과물에 대한 가치판단을 하는 건 내 몫이 아예 아니고, 성실하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해 일정에 차질이 없게 하는 게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책임감있는 태도가 되는 것이다.

5. 그래서 이런 일은 얼마든지 반복될 것이다. 서가대나 다음 번 유사 행사 주최들이 이 건을 보고 완전 무상 착취를 도모하진 않을 것이고, 행자부는 가임기여성지도를 다시 만들어 게재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당해본 사건을 똑같이 재연하지는 않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일이 발생하는 걸 예방할 검토장치는 여전히 존재하지 않고 문화적 조직적 특성으로도 검토가 안 되는 상태다. 어딘가에서 수많은 이들이 참여한 조직이 말도 안 되는 기획을 하고 그게 통과되는 일은 언제든 또 발생할 것이다. 그 사람들이 다 개인적으로 몰상식해서라기보다는, 자기 사고를 쓰지 않고 시키는 대로 할수록 그 개인에게 더 `안전하고 윤리적인` (?) 환경이 그렇게 행동하는 개인을 제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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