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날개 히요Hee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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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록 19 공지사항 방명록



한윤형, 이택광. Real Situation

이 포스트에서 이어집니다.

이 글은 사건 시점에서의 시간간격을 생각하면 엄청 늦은 뒷북입니다. 그러나 뒷북이 필요하다고 생각되어 올립니다. 이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이제 지겹다고 생각하는 분은 안 읽고 넘어가도 됩니다. 그러나 이 사건에 아직 해석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분은 읽어주시면 좋겠지요. 마찬가지로 김현진은 갑, 피해자는 을로 지칭합니다.


1. 목적.

제 글의 목적은, 이택광님과 한윤형님의 글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왜곡을 바로잡는 것, 그리고 김현진 사건에서 성찰해야 하지만 묻히고 있는 부분들을 '앞으로를 위해' 지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건에 대해 글을 쓰거나 덧글을 달거나 말을 꺼내는 각각의 주체 역시 자신의 목적이 무엇인지 스스로 물어보아야 될 것 같습니다.

갑에게 조금이라도 호의적인 시선을 가진 인물은 모두 격파해 놓고 싶은 것인지, 이미 합의가 완결되었음에도 갑의 입지를 완전히 없애고 싶은 것인지, 그 집단적 비난의 현상이 올바랐다는 정당성을 주장하고 싶은 것인지, 이택광님의 개인적 성격에 대해서, 한윤형님의 사생활이나 성격에 대해서 성토하는 것이 목적인지, 사태에 대한 더 타당한 분석을 요청하는 것이 목적인지, 이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는다면 논쟁은 점점 비생산적인 싸움이 되고 맙니다.


2. 편가르기.

제가 읽은 바로는, 이택광님과 한윤형님의 사건 관련글은 갑과 을 사이의 사건 자체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갑을 구제해주려는 시도도 아니고, 을을 비난하는 시도도 아니며, 갑과 을을 둘러싸고 개입하여 사태를 확장시켰던 '구경꾼 겸 개입자' 의 행동양상에 대한 관찰/비판/의문제기의 글이었습니다.

이 두 사람에게 가해지는 많은 비난 중 한 종류는, 의도적으로 갑을 옹호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택광님과 한윤형님이 갑과 친하다든지, 같은 패거리라든지, 그래서 옹호하려고 그런다든지 하는 이야기들이 나옵니다. 이것은 글쓰기를 편가르기로 인식하는 모습이지요. 편가르기로 '글쓰기의 목적' 을 판단하기 시작하면 모든 글은 패싸움의 한 주먹질이 될 뿐입니다. 펜이 칼보다 강하다고 해놓고 펜으로 하는 것도 그저 싸움질일 뿐이라면, 인간의 이성과 분석력은 아무런 자리를 할당받지 못합니다.

갑을 옹호할 의도나 심리적 혐의가 있건 없건, 그들의 글을 읽는 자가 보아야 할 부분은 그 분석이 타당하냐 타당하지 않으냐 입니다. 어느어느 부분에서 타당하지 않다고 반박하는 것은 가능하나, 네 분석을 보니 너는 적이다, 우리편이다를 가르는 것은 하등 쓸모없는 갈등양산에 지나지 않습니다.

글을 읽을 때, 이것이 누구의 편에서 나오는 글이냐, 라는 시선으로 읽는 것은 글의 내용이해를 방해합니다. 정치인들의 파당가르기와 물밑거래를 그토록 싫어하는 것이 정말 맞다면, 그리고 색깔론이나 인신공격으로 점철되는 선거가 아닌 정책대결의 선거를 바라는 시민이 맞다면, 똑같이 개개인이 글을 나누어 논쟁할 때에도 파당가르기나 인신공격이 아닌 내용 자체의 분석에 집중했으면 합니다.


3. 이택광님의 분석에 대하여.

이택광님의 분석에서는 세 가지를 읽을 수 있습니다.

아무도 이견을 말하기 힘들만한, (1) '개인 사이에 벌어진 일을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범위로 확대시켜버리는 인터넷 문화의 속성' 에 대한 지적. 이것은 갑을 비난한 사람들조차도 위험한 현상임을 인정할 수 밖에 없으리라 봅니다. 왜냐면 이 현상으로 인한 다음 번 피해자는 누가 될지 아무도 모르며 바로 자신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지요. 비단 갑의 사건을 떠나서라도, 개인정보가 털리고 사적인 기록들을 들추어 사람을 매장시키는 일은 그리 드물지 않게 접할 수 있습니다.

두번째는 (2) 갑이 신세대 문화에서 하나의 아이콘으로서 존재했다는 분석입니다. 저는 동의합니다. 갑과 같은 부류로 묶일 수 있는 사람이 전무후무하기 때문이지요. 한윤형 역시 20대의 시사평론 작가라는 독특한 아이콘입니다. 진중권도 직접 논쟁을 뜨는 적극적인 지식인으로서의 아이콘이지요. 누군가는 한윤형이 김현진이 진중권이 누군지 전혀 모르기도 하니 이것은 유명세의 문제가 아닙니다. 어떤 '특정한 사회적 상징성' 을 그가 가지고 있느냐 아니냐의 차원이며, 김현진은 그것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세번째는 (1)이 (2)를 만나 들불처럼 번졌다는 것, 즉 (3) 갑에 대한 도덕적 공격이 쉽게 감행된 이유가 바로 상징성에 대한 공격이라는 지적입니다.

이 분석에도 동의합니다. 만약 갑이 유명하지 않고 본래 직업이 밝혀지지 않은 한 명의 블로거이며, 폭행피해자의 포스트를 도용해서 동인지같은 걸 팔았다고 칩시다. 그럼 (1)에 의해 확대된 비난은 발생했을지언정, 갑의 정체성의 핵심을 박탈하려는 시도는 발생하지 않았으리라 추론할 수 있습니다. 이번 사건에서 갑으로부터 '작가' 로서의 정체성을 박탈하려는 시도가 있었음은 부정할 수 없고, 그 정체성은 진중권같은 작가, 조갑제같은 작가가 아닌, '연애칼럼과 시사칼럼을 쓰는 진보적인 20대 여성작가' 라는 현재 갑이 대표하고 있는 상징성과 직결된 정체성이라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습니다.


"사실은 2PM의 박재범을 쫓아낸 그 멘털리티가 다른 얼굴로 나타난 것뿐이다" 라는 분석에도 저는 동의합니다. 박재범의 언행을 용납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할지라도, 그의 정체성 (한국의 아이돌 가수) 을 박탈할 권리는 없음에도 비판자들은 바로 그것을 요구했습니다. 상대방의 주요 정체성을 박탈하여, 사회적 사망을 요구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 빌미는 양쪽 다 (1)입니다. 공적인 자리에서 성토될 꺼리로는 적합하지 않은 사적 언행들이 비판의 주요 항목이 되어 정체성 박탈과 사회적 사망의 근거로 비약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또한 양쪽 모두에서, '사적인 영역을 끄집어내어 성토하며 상대방의 사회적 사망을 요구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 는 여론의 크기가 너무 작았습니다.

이 부분이 우리 사회의 포용력이 경직되었는가 아닌가를 보여 주는 지표가 될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에서는 내가 싫어하는 자와의 공존, 내가 싫어하는 사상의 자유, 내가 증오하는 이들의 권리를 지키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그래야 누군가가 싫어하고 증오할 나의 권리와 사상과 자유도 보호받습니다. 박재범과 김현진 사건이 서로 다른 면이 매우 많겠지만, 사적 영역을 빌미로 이들을 각자의 활동 세계에서 퇴출시키고자 한 시도가 거세게 존재했다는 공통점은 짚어둘 만 합니다.


이 사건에 참여하여 1/n로서 갑을 비난하는 목소리에 보탬이 되었던 사람들은, 단순히 사건 자체에 놀라고 경악한 것 뿐일 수도 있으며, 그런 정체성 박탈이나 상징성 공격이라는 생각은 해본적도 없을지도 모르고, 갑이 그런 언행을 하고 그런 글을 쓴다면 일관성이 없으니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박탈하는게 옳지 않냐고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개개인은 자신의 동기가 타당하다 믿더라도, 그것이 집단으로 뭉쳐 어떤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했을 때에는, 과연 이 결과가 그런 단순한 동기들의 결합체로 볼 수 있느냐는 의문은 가질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일관성 없는 작가에 대한 글쓸 권리 박탈은, 갑이 언행불일치하는 유일한 작가가 아니며 다른 작가들에 언행불일치에 대한 린치가 자주 발생하는 것 또한 아니라는 점에서 갑에게 발생했던 사건의 주된 이유로 보기엔 부적합합니다.

분명 이 현상의 어딘가에는, 표면적으로 드러난 갑의 잘못 이상으로 갑을 향한 '증오' 와 '무차별적 공격' 을 읽어낼 수 있습니다. 이 '증오' 의 정체를 분석해내어야 어디서부터 바로잡을지를 볼 수 있으며, 이것이 갑이 가졌던 상징성에 대한 파괴라는 이택광님의 해석은 전적으로 옳은 것은 아닐지언정 어느 정도 시사점을 가집니다.

우리는 갑과 같은 아이콘이 다시 나타났을 때, 그 사람이 폭행과 도용을 제외하고 갑과 거의 유사한 성격과 사생활을 가지고 있을 경우, 그를 인정하고 수용하며 프라이버시를 존중해 줄 수 있을까요? 그리고 모종의 죄를 지을 경우, 그 죄에 대한 타당한 처벌 혹은 합의를 받는다면, 그 이상의 린치나 퇴출요구는 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갑의 상징성을 거부하는 게 아니라면, 여기서 '그렇다' 는 답이 나와야합니다. 아니면 새로운 문화적 아이콘은 대중의 검열과 인민재판에 알몸으로 통과해야 되는 사회가 될겁니다.



마이클 잭슨에 관한 허지웅님의 글을 다들 한번씩 읽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마이클 잭슨 생전에는 그를 욕하면서 소비하고, 그가 죽자 사실은 그는 위대했다며 다시 한번 소비했지요. 그러나 마이클 잭슨 생전에 그를 욕했고 죽은 뒤 위대하다고 말한 사람 A가 있을 때, 자신은 마이클 잭슨을 소비했다고 인식하고 있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단지 그땐 욕할만 해서 욕했는데, 죽고 나서 생각해보니 위대했다고 느끼고, 죽은 자를 욕하긴 뭐하니 좋은 점을 칭찬한 것 뿐일지도 모르죠.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보인 특정한 현상이 있어 이를 분석하면, '사람들은 그를 살아서는 가십거리로, 죽어서는 위대함으로 소비했다' 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현상에 대한 분석은 이런 차원의 문제입니다. '내가 그랬단 말야?' 가 아니라, 집단적으로 드러내는 형태에 대한 해석입니다. 이택광님의 글 또한 이런 차원에서 접근할 때 그 효용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추가로, "나는 문제의 개인에게 책임을 묻고 있는 주체의 정체에 대해 질문을 던진 것이고, 이 과정에서 과도하게 자신의 쾌락을 일반화했던 이들이 반성할 것을 요구한 것이다." 라는 이택광님의 문장은 중요한 지점을 말하고 있습니다.

갑에게 도덕적으로 올바르지 못하며 일관성이 없고 실망스러운 사람이라며 비난을 가한 수많은 주체들의 정체는 '네티즌' 속에 가리워져 있습니다. 비난한 자신의 삶은 그렇게 만인 앞에 까발리며 평가당하지 않은 채 막연한 정의감을 토대로 갑에게만 그 책임을 끝없이 물릴 수 있습니다. 이 비난은 피해자를 구제한다는 정의감을 충족시키고 한 사람을 정당한 무게 이상으로 공격하되 자신이 책임지는 영역은 전혀 없다는 차원에서 '쾌락' 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자연스럽고 당연하다고 믿었던 수순의 결과가 지나친 사회적 린치와 한 사람에 대한 매장욕망으로 나타날 때, 이것을 설명할 다른 메커니즘을 접한다는 것은 1/n로 참여했던 사람들에게도 결코 나쁜 일이 아닙니다. '우리를 까는 거냐' 혹은 '갑을 구제하는 거냐' 라는 시선 대신, 비평가의 메커니즘으로 사태를 읽어볼 시도를 해보았으면 합니다.

솔직히 이거 쓰면서도 택빠나 이택광 구제론(?)이란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그분과는 전혀 교류가 없습니다. 제가 가보는 경우도 계절당 한번꼴일 거 같군요. 이번 사건 전까지는. 그분도 여기 오는지 안 오는지 모릅니다. 시사점이 있는 분석이 단순히 '갑을 구하려는 무리한 옹호' 정도로 치부당하고 넘어가는 것을 아깝게 여겨, 제 나름의 해석을 달아봅니다.

글이 너무 길어져서 한윤형님의 분석에 대한 제 분석은 다음 포스트로 넘기지요.

핑백

  • 외날개 히요Heeyo : 이어서. 한윤형, 이택광. 2009-10-29 01:16:53 #

    ... 이 포스트에 이어집니다. 4. 한윤형님의 분석에 대하여. 다른 분석은 됐고, 이 글에 대해서입니다. 이택광님 글과 마찬가지로 이해하기 참 어렵게 되어 있는데, 몇 가지 필요하다 싶은 부분 ... more

덧글

  • dma.. 2009/10/28 21:46 # 삭제 답글

    1) 김현진을 비판하는 것과 '피해자의 과실'을 비판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김현진 사태를 이야기할 때, '피해자의 과실'은 언급할 필요가 없지요. 피장파장의 오류입니다.

    2) 폭행 피해자의 과실에는 사람들이 반응하지 않지만, 김현진에게 반응하는 이유는 그녀에게 '상징성'이 있기 때문은 맞습니다. 하지만 그 상징성은 10대 문화 아이콘으로써 상징성은 아니지요. 그게 벌써 몇년 전 일입니까. 김현진의 근래 사회적 포지션은 '젊은 여성 진보논객(혹은 글쟁이)'입니다. 진보적인 가치를 표방하는 사람에게 높은 도덕적 요청 하는 것은 과실이 아닙니다.

    3) 편가르기를 먼저 시도한 것은 한윤형입니다. '언니네 연대'를 언급하는 순간, 니편 내편을 명백하게 갈라버렸지요. 또한 한윤형과 이택광이 대놓고 서로를 챙기는 모습 또한 분명히 존재합니다. 한과 이의 패거리 문화는 오랫동안 비판되어왔지요. 오해받기 싫으면 두 사람이 알아서 오해의 여지를 줄여주면 됩니다.


    한윤형씨는 참 복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까지 진상짓을 하는데, 챙겨주는 사람이 아직 이렇게 많나요.
  • 히요 2009/10/28 21:52 #

    1) 피해자의 행동이 '과실' 즉 잘못이라는 걸 인지한다면 그것으로 합의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걸 꼭 대놓고 언급해야만 한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누누히 말했지만 다시 이런 사건이 벌어질 때 '사생활 폭로와 그로 인한 비난' 이라는 방식으로 가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니까요.

    2) 진보적인 가치를 표방하는 사람에게 폭행과 도용을 하지 말 것을 요청하는 것은 과실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연애사를 공개해서 인격을 비난하는 것은 과도하다고 생각합니다. 님께서는 이것 역시 정당한 비판이라 생각하실지 모르겠으나, 진보적 가치를 가진 자가 이행해야 할 의무는 폭행/도용에 대한 책임 뿐, 사생활에 대한 도덕적 의무는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3) 누가 시도했는지의 책임을 따지고 싶다면 그 책임을 한윤형에게 돌린다고 해도 말릴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편가르기를 누가 했냐를 따지기보다, 편가르기를 '그만두고' 분석 내용 자체에 귀기울이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더 나오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리고 저는 한윤형님을 챙겨 주는 게 아닙니다 -_-; 누누히 말했지만 이 사태에서 '필요한 성찰' 이 전혀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언급하는 것이며, 그것이 님의 의견과 다르다 하여 '누구 챙기기' 라는 수준낮은 의도에서 시작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식의 비생산적인 편가르기는 그만했으면 합니다.
  • dma.. 2009/10/28 22:14 # 삭제 답글

    1) '사생활 폭로'이라는 2차 폭력이 가해진 것은 우려할 만한 일입니다. 그로 인해 '1차 과실', 그러니까 '폭력'과 '도용'에 대한 과실도 가려지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다만 지금은 '사생활 폭로'로 부터 김현진을 보호해야 한다고 봅니다. 밸런스의 문제이지요. 저는 사생활 폭로 문제로 김현진이 받는 심적 고통에 대해서는 '동정'하며, 그 현상을 우려스럽게 바라보지만. '폭력/도용' 의 문제에 대해서는 냉정합니다. 그녀는 '진보적'이라는 말을 입에 담을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2) 폭행과 도용이 아니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김현진에게 엄격해야 하는 부분은 여기입니다. '사생활 노출'에 대해서는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다른 사람의 연애사에 대해서는 관심없습니다. 지저분하든 깔끔하든 문제가 아니라고 봅니다.

    3) 한윤형의 글에 대해서 균형잡힌 비판을 하신 다음에 편가르기의 부당함을 말씀하시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되고. 이게 바로 편들기라지요. 한윤형 글 분석을 기대하겠습니다.
  • 히요 2009/10/28 22:21 #

    1) 이 부분은 합의점이 찾아졌네요. 마지막 한 줄을 제외하고는 공감합니다. 저는 사람에게는 갱생의 기회가 언제든 존재해야 한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이후 그분이 진보적인 실천을 한다면 진보적이라는 평가를 다시 줄 수도 있다고 판단합니다.

    2) 폭행과 도용에 대해서라면, 저 역시 그것이 그의 잘못이라고 동의하고 있으며 그 부분에서 저는 전혀 반박하는 바가 없습니다. 제가 문제삼는 것은 바로 그 '다른 차원' 이라 하신 연애사 폭로와 비난에 대해 '반성의 여론' 이 없다는 데 대한 우려입니다.

    3) 알겠습니다. 제 블로그를 봐오신 분인지 어떤지 모르겠으나, 제가 한윤형님과 아는 사이이기는 하되 교류는 거의 없는 입장입니다. 그가 책을 내면 사서 읽고 호평하는 정도지요. 그를 무리하게 편들어서 제가 얻을 이익은 전혀 없습니다.
  • dma.. 2009/10/28 22:54 # 삭제 답글

    1) 지금까지 김현진이 사회적약자를 운운하며 했던 이야기는 '신뢰할 수 없습니다'만, 이후 복귀할 여지는 열려 있어야 하는게 맞습니다. 히요님이 균형잡혀 있다고 봅니다. 다만, 계속 언급하시듯이 '김현진' 사태 말고도 풀어야 할 일들이 많지요.

    2) '사생활 공개'와 '인터넷의 확산' 문제는 복잡다단한 문제들이 섞여 있기 때문에, 어렵고 복잡합니다. '김현진의 상징성'에 대한 이택광의 분석, 저는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김현진의 과실 -> 상징성에 대한 공격] = [박재범의 과실 -> 상징성에 대한 공격] 이 두가지를 놓고 옳다 그르다를 이야기합니다. 이는 '사생활 공개'의 측면에서만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김현진의 경우 박재범과 마찬가지로 사적영역의 공개로 피해를 받고 있지만, 그것만 부각될 때 폭행과 도용이라는 공적 과실이 은폐됩니다. 김현진과 박재범은 같이 않습니다. 김현진이 잘못했지요. 한윤형이 이름붙인 '언니 연대'가 김현진에 대한 반감은 많은 부분 타당합니다.

    3) 한윤형이 '언니 연대'라고 이름붙인 집단들도 지금 히요님이 느끼는 연대감 이상도 이하도 아닐겁니다. '거의 없다'고 하시면, 안면은 있는 걸로 알겠습니다. 호평을 쓰신다니 싫어하지는 않는 사이로 알겠습니다. 한윤형이 언급한 '언니 연대'가 가진 정도의 유대감입니다. 제가 한윤형을 챙긴다는 표현이 과했을 수도 있지만, 한윤형의 '편들기'/'편가르기'가 제대로 평가받지 않는다면 저 또한 이 부분을 사과드릴 이유가 없지 않겠습니까.

  • 히요 2009/10/28 23:05 #

    워낙 사안이 복잡하게 진행되고 있어서 덧글 달리면 깜짝 깜짝 놀랍니다만 그래도 읽고나면 좀 안도가 되네요.


    3)에 대해서는, 저도 무슨 자매들의 연대가 있다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_- 그래서 그의 분석 중에서 가치 있는 부분 - 그러나 주목되지 않고 흘러가는 부분 - 만 빼서 지금 포스트를 쓰는 중입니다.


    2) 부분에서는, ...사생활 부각으로 폭행/도용이 은폐되었던가요?

    사생활 공개의 측면에 대한 부각이 밸런스를 무너뜨릴 것 같다는 우려는 이해가 됩니다. 다만 폭행과 도용은 너무 당연히;; 잘못한 거라서 뭐 더 할 이야기가 없네요. 그것은 명명백백하게 잘못입니다.

    이택광님과 한윤형님조차 폭행과 도용이 죄가 아니라고 말하진 않은 걸로 알고 있는데 (이택광님은 걍 그 부분의 시시비비를 말을 안한 걸로 알고, 한윤형님은 잘못이라고 발언한 것으로 압니다) 혹시 제가 잘못 알고 있다면 지적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제가 인식하기로는 폭행/도용에 대한 잘못이 블로그스피어를 기준으로 할 때 대중적으로 크게 부각된 데 비해, 사생활 폭로의 측면은 거의 조명되고 있지 않다.. 거든요. 그래서 이쪽의 글을 쓰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밸런스에 대한 지각이 서로 반대인 듯합니다. 이택광/한윤형이 지적했다고 해도, 블로그스피어와 이오공감에서의 반응과 비교하자면 턱없이 작은 규모가 아닌가 여기고 있습니다.

    저는 사건이 진행되는 내내 지켜보고 있었으나 아무 글도 쓰지 않았던 것은, 당시의 저부터 이미 김현진에게 당시 반감을 가진 분들에게 공감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초반에는 저도 사생활 폭로에 대한 문제의식이 크지 않았습니다.)

    이 글도 마찬가지로 김현진의 잘못 (폭행/도용) 을 두둔할 의사는 1g도 없으며, 이택광/한윤형의 지적 중에서 되새겨볼 필요가 있는 것만을 제 나름의 해석으로 다시 밝히고, 사생활 폭로에 대한 부분을 '그냥 넘어가지는 말자' 정도의 문제제기라고 스스로 여기고 있습니다. 제 글에서도 밸런스가 잘못 되었다고 느낀다면, 언제든 그 부분에 대한 지적 부탁드립니다.
  • dma.. 2009/10/28 23:46 # 삭제

    1) 만약 글의 목적이, '사이버테러로부터 김현진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라는 것이었다면 히요님의 글에 제가 댓글을 달 이유는 없거나, 지지하는 글을 달았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한윤형과 이택광에 대한 왜곡을 바로잡는 것'이 목적이라고 하셨기에, 제가 의아하여 댓글을 달았던 것 같습니다. 저는 한윤형과 이택광이 왜곡하고 있는 것도 만만치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이 해소된다면 제가 히요님의 글에 반론을 달 이유가 없을 듯 합니다.

    2) 링크하신 이택광의 논의는 제가 보기에는 사태파악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행해진 인상비평으로 보입니다만, 히요님께서 지나치게 높게 평가하여주시는게 아닌가 합니다. 박재범/김현진 사태의 교집합은 인정할 수 있지만, 차이점(김현진에게는 분명한 과실이 있었고, 이에 대한 비판은 정당한 것이다)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를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3) 한윤형은 이 부분에 대해서, 이전에 균형있는 글을 쓴 적이 있었습니다. 다만 이번 '자매들의 연대'에 대한 글에는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4) 만약 히요님 스스로의 '사생활 폭로로 인해 피해 받은 김현진을 보호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면, 저 또한 그 부분은 얼마든지 동의합니다. 하지만 한윤형과 이택광의 논의를 빌리신다면, 저로써는 갸우뚱 할 수 밖에 없네요.


  • 히요 2009/10/29 00:18 #

    1) '사이버테러로부터 김현진을 보호하기 위함' 은 아닙니다. '우리가 자신도 모르게 사이버테러의 가해자가 될 지도 모르므로 스스로를 돌아보자' 쪽에 가깝습니다. 이것은 말씀드렸다시피 제가 최초의 입장이 피해자쪽에 가까웠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2) 이택광님이 김현진의 잘잘못에 대해 파악하기도 전에 글을 쓴 것이 경솔했다는 점은 동의합니다.

    3) 저도 같습니다. 그의 이전 분석은 타당했고, 자매연대글은 잘 쓴 글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4) 그들의 논리를 빌리지 않은 제 의견은 < http://heeyo.egloos.com/1963001 > 이 포스트에서 거의 다 다루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택광님과 한윤형님의 분석이 완벽하지도 않고 그들에게 잘못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제 목적은 넘어가기 아까운 시사점을 건지는 것입니다.

    그 내용은 동의하실만한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만, 저는 한 번쯤 짚어두고 지나가고 싶네요.
  • 흠... 2009/10/28 23:25 # 삭제 답글

    적극 공감하며 읽습니다.
    공/사 영역의 구분과 관련하여, 그리고 표현의 자유의 범위와 관련하여, 공인의 책임과 관련하여, 여러가지 논점들이 종합적으로 섞여있는 이러한 현상들(박재범, 강인, 목수정-정명훈, 그리고 김현진까지)에 대해서,

    제가 따지는 것은 주로 세가지 정도인데요. (개별 사건들에 일일히 적용하지요.)
    1. 사생활이 폭로될 만한 정당성이 있는가.
    2. (이미 폭로된 경우) 그 사적 부도덕에 대해서 제3자나 타인들은 계속 발화할 이유가 있는가
    3. 1,2가 이미 현상적(정당성 고찰 불문)으로 진행된 이후에, 그 사적 부도덕을 이유로 공적 행위 금지를 요청해야 하는가.(해당 주체의 '신분'과 '행위'를 개별적으로 검토하여) 정도입니다.

    님 본 포스팅에 어느 정도 관련 있는 포스팅 추천드립니다. http://minoci.net/803
  • 히요 2009/10/29 01:50 #

    우와. 만만한 글이 아니네요. 공부하듯 읽는 중입니다.

  • 2009/10/29 00:46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히요 2009/10/29 01:09 #

    아. 감사합니다. 이해해 주신 점도 정말 감사합니다.

    좋은 밤 보내세요.
  • 2009/10/29 03:09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히요 2009/10/29 03:14 #

    아. 근데 그분은 마지막에 제 글에 대해서 초반에 가졌던 우려를 떨치고 나름의 취지를 인정해 주셨습니다.
  • 2009/10/29 03:36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히요 2009/10/29 03:41 #

    어처구니가 없다, 저열하다, 못났다, 이런 말들은 보통 상대방을 설득하기보다는 싸우자는 공격으로 읽히지요. 저도 예전엔 저런 거 참 가감없이 사용했었던 기억이 나는데 그 결과는 늘 참담했던 것 같..... 쿨럭.


    비공개님의 독자가 저라면, 저는 제가 공격당한다는 느낌 없이 그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같은 의견을 지닌 상태니까요. 그러나 비공개님이 비판하는 사람 중 한 명이 읽었을 때 설득될 수 있어야 서로에게 의미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저런 .... 도덕적 평가어들은 가급적 없는 편이 좋지 않나 싶어요.
  • 2009/10/29 09:33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히요 2009/10/29 13:09 #

    종이가 뭔가 했다가 깨닫고 대폭소....

    모르는 뭔가가 사적으로 더 있다는 건 전혀 고려해 줄 필요가 없지요. 스스로 블로그를 일터로 쓰고 있다고 말하고 이름 걸고 책 내는 작가로서 현상분석을 했는데 거기에 독자가 읽어서 알 수 없는 배경이 있다면 그건 작가의 오류가 될테니까요. 마찬가지로 독자는 그 글이 타당성이 떨어지면 그 사람의 분석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면 될 뿐, 사적인 다른 원인이 있지 않을까 -_-;; 라고 생각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해 보입니다. 이런 식의 흐름은 굳이 폭로하지 않더라도 '저 사람 사생활에 문제가 있는거 아냐?' 라는 관점을 유도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사건에서 김현진 빼고 나머지는 다 저에게 블로그로 어느 정도 닉은 눈에 익은 사람들간의 일이었고, 혹은 제가 여성이라서 그들의 심리변화를 한윤형보다는 더 잘 추적할 수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바깥에서 그들의 정체성을 평소에 알지 못한 상태에서 이번에 '발생한' 사건만으로 해석하다보니 그렇게 되었나보다 정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네티즌들이 우루루 일어나 누군가를 린치했다, 라는 것만 놓고 보면 일견 비슷해보이는 데가 있는데, 사태를 더 가까이서 본 사람들에게는 할 말이 많은 셈이죠 (...)
  • 2009/10/29 10:51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히요 2009/10/29 13:20 #

    헐, 그분입니까? 그렇다면 그 부분에 관해서는 비공개님의 평가에 동의할 수 밖에 없겠네요 -_-;

    저도 그 '섹스칼럼니스트' 라는 언급이 너무 생뚱맞아서 거기 그게 왜 들어가?..라는 심정이긴 합니다. 분명 사생활 컨텐츠의 여성 블로거들의 숫자는 대단히 많지만, 그 내용은 대부분 섹스와 상관없으며, 이번 사태에서도 또한 마찬가지이기 때문이겠죠. 한윤형은 그 장르를 언급한 이유가 사생활컨텐츠의 정점에 있는 게 섹스칼럼이어서, 라고 쓴 듯하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 끌어 썼다기보다는 도발적인 의미가 강해 보이더군요. 이게 사건과 관계없는 한 개인 -_-; 이 단박에 떠오를 정도의 서술이라면 더더욱 글의 논점 자체를 방해하는 요소겠군요.


    그리고 밑에서 네번째/세번째 줄에 동감 (...) 기정사실화 시켜주고 있죠 -_-;

    마지막 두 줄은, 이 사건이 결국 '쌍년이 글쓰게 놔두면 안된다' 로 기억되는 것보다는 차라리 낫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일련의 지적들이 나오기 전의 사태는 저런 식으로 정리되고 있었습니다.

    심각한 범죄가 나올 때마다 대중의 분노와 응징욕망에 우려하게 되는 저로서는 (그리고 이번처럼 법적으로 덜 심각한 범죄에도 마찬가지의 응징욕망이 보이지요.) 두 가지 거친 해석 중에 굳이 고르라면 차라리 비공개님의 밑에서 둘째줄 따옴표안의 내용으로 남는 게 낫지 싶네요...
  • 여인무사 2009/10/29 15:09 # 삭제 답글

    응징욕망!!!
    그건 친일파 청산을 제대로 못한 탓에 분노가 길을 잃어서 그런 게 아닐까.
  • 히요 2009/10/29 15:13 #

    블로그스피어에서 활동하는 분들이 상당히 젊다는 것을 감안하면
    친일파보다는 눈에 보이는 사회적 부조리들에 대한 분노를 풀길이 없어서? (...)

    ....좀 많이 추상적인 이야기가 되고 있지만 여튼 (...)
  • 여인무사 2009/10/29 15:10 # 삭제 답글

    방금 헌재 판결 소식 듣고 나니 내 안에서 응징욕망이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 히요 2009/10/29 15:12 #

    (....) 저도 방금 들었네요. 이건 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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