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날개 히요Heeyo

heeyo.egloos.com

독서록 19 공지사항 방명록



결국 쓰고 마는군요. Real Situation

이하 김현진을 갑. 폭행피해자를 을이라 합니다.

1.
폭행사건은 명백하게 갑의 잘못이며 갑도 인정하고 있습니다.

2.
도용 혹은 복제는 법적 잘못에 해당하는지 어떤지 의문의 여지가 있을 수 있지만, 작가로서의 윤리란 느슨해선 안되므로, 이것도 갑의 잘못이라 봅니다.

3.
이 두 사건을 고발하는 과정에서 갑의 사적 생활에 대해 공개적으로 폭로한 것은 을의 잘못입니다.

4.
3의 결과를 보고 갑의 인간성에 대해 비난했던 사람들은, 사생활이 폭로가 갑에게 끼칠 피해에 대한 문제점을 간과하고, 그로 인한 명예훼손의 여지를 더 넓히고 강화한 도의적 책임은 있습니다.

5.
갑이 작가로서 글을 써선 안 된다거나, 갑의 사회적 매장을 바라는 목소리도 간혹 있었는데, 이것은 경범죄에 사형선고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잘못을 저지르면 거기에 맞는 합당한 처벌 혹은 피해자의 합의라는 게 있습니다. 증오로 인해 매장을 소망한다는 것은 잘못입니다.

6.
다른 폭행가해자(혹은 도용혐의자)들이 죄의 대가로 그 인간성과 사생활을 공적으로 폭로당하며 최소 수백명(추천수) 앞에서 조리돌림 당하며 죄값을 치르진 않습니다. 죄에 대한 대가는 고소당하거나 합의입니다. 따라서 갑은 자신의 죄에 비해 과도한 사회적 린치를 당했다고 판단합니다.

7.
갑과 을은 합의를 끝냈습니다. 을이 3에 대해서 갑에게 사과했는지, 혹은 최소한 자신의 사생활 폭로가 부당한 면이 있었다는 걸 인지하고 있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으나 합의가 되었다면 갑-을 양자간에는 더이상 이 일로 왈가왈부할 것은 남지 않았다고 봅니다.


단, 갑/을을 떠나 현상으로서 이 사건에는 남은 것이 있습니다.


8.
향후 어떤 피해를 겪은 사람이 가해행위를 인터넷을 통해 고발할 경우, 을이 했던 것과 같은 형태의 사생활 폭로의 방식을 쓰는 일이 또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듭니다. 이것은 이 사건을 통해 짚어보고 경계해야 할 부분입니다.

고발할 죄목만 고발하면 됩니다. 사생활 폭로로 상대방을 인격적으로 매장시키는 행위는 죄에 대한 정당한 처벌을 넘어선 린치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평소 성격' 을 문제삼거나 사건과 관계 없이 '사람들이 비난할만한 부분' 을 엮어넣는 것은 인신공격의 영역이 됩니다. 인터넷을 통해 묵살될수도 있었던 피해자의 권리가 확보된다는 것은 긍정적이나, 권리확보를 넘어 가해자매장에 이르지 않는 적정선이라는 것을 찾을 필요가 있습니다.

9.
수많은 수동적 혹은 반(半)수동적 참여자들의 문제인, 4, 5, 6번의 문제가 남습니다. 자신이 읽은 고발글에 어떤 한 사람이 사생활적 요소와 인신공격적 요소가 같이 담겨 있을 때, 그것을 이번처럼 그대로 소비하고 비난에 동조해 사회적 린치를 가하고 이에 대해 그 각각의 개인은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끝나도 좋은가, 여기에 대한 의문이 존재합니다.

경악해서 비난할 만한 어떤 내용을 보았고 따라서 인지상정의 결과로 비난하게 되었다 해도, 결과적으로 한 사람이 죄값 이상의 매도를 당했습니다. 여기에는 정확한 개체로서의 주체가 있는 것이 아니며, 사건에 끼어들어 갑을 인격적으로 비난한 사람들 모두가 1/n 씩의 주체가 됩니다.

비슷한 방식의 사건이 발생했을 때, 또다시 가해자에 대한 가열찬 비난이 이번처럼 반복되어도 정당한가 아닌가, 고발하려는 내용과 유리된 사적정보를 활용해 비난하는 것은 정당한가 아닌가, 이 사건과 같은 방식으로 여러번 재현된다 하더라도 이 현상은 아무런 문제가 없는가 아니면 어느 지점에서 무엇을 짚어 성찰해야 할 것인가, 이런 문제가 남습니다. 아마도 이택광님과 한윤형님이 지적하고 싶었던 평론가로서의 현상분석은 이 지점이었으리라 짐작합니다. 그 분석에 동감하고 아니고를 차치하고 말입니다.

이 부분에 대한 분석과 반성이 없다면, 인지상정의 이름을 빌린, 피해자 구제의 이름을 빌린 구경꾼들의 린치는 언제든 횡행할 수 있습니다. 좋은 일이 아닙니다. 따라서 갑이 잘못한 것이 맞더라도, 갑을 비난한 '여론' 에는 반성할 부분이 분명 존재합니다.

10.
사족 몇 마디.

폭행피해라는 걸 상당히 끔찍히 여기기 때문에 정서적으로는 저는 을에게 공감합니다. 저도 사태를 접한 순간에는 비슷한 감정을 느꼈기에, 그 글을 본 많은 사람들이 갑에게 배신감을 느끼거나 경악하고 분노하는 반응을 보인 것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덧글이나 트랙백이나 블로그에서의 한 번의 비난, 한 번의 경악, 한 번의 욕, 이런 것은 각각에게는 많은 책임을 요하지 않는 반쯤 사적인 활동입니다. 따라서 왜 그랬는지 이해못할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결과가 이렇게 드러났을 때, 이 결과를 통해 1/n로서 자신의 역할이 어떠했는지 반추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갑과 아는 사이가 아니며, 갑의 글은 제 독서와 글쓰기 영역과 다소 유리되어 있어 저에게 관심 밖의 인물입니다. 그러나 아직 젊은 사람이고 반성하고 다시 자기 자리를 찾아야 할텐데 이번 사건은 그에게 너무 큰 압력을 주지 않았나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이택광님과 한윤형님의 블로그에서 벌어지는 논쟁을 보다보니, 결국 갑이 당한 과도한 린치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핑백

  • 외날개 히요Heeyo : 한윤형, 이택광. 2009-10-28 20:55:38 #

    ... 이 포스트에서 이어집니다. 이 글은 사건 시점에서의 시간간격을 생각하면 엄청 늦은 뒷북입니다. 그러나 뒷북이 필요하다고 생각되어 올립니다. 이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이제 지겹다고 생각하는 ... more

덧글

  • 여인무사 2009/10/28 19:13 # 삭제 답글

    모르는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구나.
  • 2009/10/29 16:11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히요 2009/10/29 16:37 #

    감사합니다!
  • 2009/10/30 15:53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히요 2009/10/30 18:16 #

    오랜만입니다.
    짧게 쓰고 싶었는데 아무리 줄여도 더이상 안 줄여지네요.
    답변이 좀 길지만,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1.
    그렇게 스토리로 서술하면 ‘악녀’ 라는 캐릭터가 완성됩니다. 이번 사건에서 사람들이 분개한 이유도 그것일테지요. 아실 것 같지만 저는 윤리에 대단히 빡빡한 인간입니다. 그런 비윤리적인 캐릭터를 보고 기분이 어땠겠습니까 (...) 그럼에도 제가 주목하는 것은 ‘합당한 처벌’ 과 ‘매장’ 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 스토리안의 캐릭터 갑이 아니라, 법적 차원에서의 가해자 갑에게는 세 가지 혐의가 있습니다. 폭행/도용, 그리고 말씀하신 것을 굳이 넣자면 ‘언어폭력’ 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한 법적 해결책이 뭔지는 이미 서로 알고 있습니다. 고소당하여 징역살거나 벌금을 내거나, 혹은 피해자와 합의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회에서 개인 간의 가해-피해를 조정하는 방식입니다. 이 결론은 이미 났습니다. 피해자는 합의했고, 비공개님은 피해자가 아닙니다.

    2.
    비공개님은 제3자로서, 피해자마저 결론 낸 사건에 대해, 그 이상의 가해자의 (작가로서의) 매장을 요구하시는 겁니다.

    그 스토리상의 캐릭터가 ‘악녀’ 이라는 정서적 공감을 불러내면 동감하는 사람은 많이 나올 겁니다. 정서적 공감에 기대는 거라면, 우리는 모든 중범죄자들을 향해 저런 개새끼는 그냥 능지처참해서 죽이라고 외칠 수도 있고, 동감하는 사람은 얼마든지 나올 겁니다. 그런 식의 정서적 동조는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법과 합리와 타당한 이유가 아니라, 정서적 분노에 의거한 처벌은 합당한 처벌이 되리라 기대할 수도 없습니다.

    3.
    한 번 강도짓 한 사람이 출소 후 사회에 복귀하여 원래 직업을 되찾거나 혹은 작가가 된다면 어떨까요. 이번 죄가 고소당해도 벌금형 정도였을 거라는 지적을 토대로 하면, 징역을 산 사람은 더 중한 범죄를 지었겠지요. 죄를 지은 사람은 사회적 활동을 다시 추구할 권리가 사라진다고 볼 수 있겠습니까.

    법적인 처벌은 국가권력이 주체가 되어 하게 됩니다. 합의하지 않고 고소에 이를 경우 판사가 그 판단을 내리고, 그 판단이 잘못되었을 경우 판사의 이력에 남거나 비판을 받게 됩니다. 혹은 사법부 전체의 평판의 문제이기도 하죠. 그 강제적 결정에는 책임의 주체가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법적인 처리를 넘어선 인민재판으로 인한 가해자의 퇴출은, 그것이 잘못되거나 과도할 경우 책임질 수 있는 자가 아무도 없습니다.

    비공개님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전면에 나서서, 본인이 그 주체로서의 책임을 지고, 갑을 작가의 세계에서 퇴출하게 하여, 갑을 퇴출시킨 사람은 바로 나다, 라고 나서며, 그 잘잘못에 대한 비판에 직접 맞서실 예정은 아닐 겁니다. 네티즌이라는 혹은 대중의 여론이라는 이름 하에 아무도 스스로는 책임을 감당하지 않고 큰 목소리에 얹혀서 갑의 몰락을 부추기는 데 일조하는 형태겠죠. 이런 집단적 공격은 갑에게 타격을 줄 수는 있는데, 아무도 책임은 지지 않습니다.

    ‘피해를 받은 바도 없는데 책임도 지지 않고 대중 속에 숨어서 이미 해결된 사건의 가해자에게 추가로 사회적 사망을 원한다’ 이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하시는지요. 피해자구제는 이제 이유가 될 수 없습니다. 완료된 사건이니까요.

    4.
    그 사람의 이번 도용건이 일반적인 도용건 이상의 비윤리적 사건이라는 비판은 가능합니다. 그것과 별개로, 직업윤리에 반하는 사건을 1회 저지른 사람은 그 직업을 그만두어야 한다, 라는 사회적 합의는 성립하기 힘듭니다. 그건 1회의 범죄로도 모두 자신의 활동영역에서 낙오되어 마땅하다는 이야기가 되니까요. 비공개님도, 작가윤리를 단 한 번이라도 어긴 적이 있는 사람의 공적 글쓰기 기회는 원천 차단해야한다는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고 싶은 건 아닐 겁니다.

    글쓴이로서의 갑의 존재가 싫은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정당한’ 영역은 작가윤리에 위배된 것이 명백하게 밝혀진 작가의 글은 읽지 않겠다는 불매운동입니다. 누군가 그의 글을 읽는다면 그는 글쟁이로 살아남습니다. 글 자체가 가치가 낮아서 읽지 않게 된다면 스스로의 무능에 의해 글쟁이로서의 입지를 잃을 겁니다. 다 알고도 갑의 글을 읽겠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을 독자로 하여 갑이 글 쓸 권리는 무슨 근거로 부정하실 수 있을지요.

    갑이 이번 사건을 반성하고 좋은 작가로 거듭난다면 그것은 모두에게 좋은 일입니다. 반성하지 못한다고 해도 이런 사건을 다시 안 일으킨다면 그것으로도 괜찮은 일입니다. 또 이런 사건을 일으킨다면 또 비판하고 ‘죄값에 맞는’ 처벌을 하면 됩니다. 글쓰지 말아야 한다고 하신다면, 이런 모든 기회를 다 없애야 한다는 뜻이 됩니다.

    인신공격의 오류에 대해서 아실 겁니다. 갑의 이후 글들에 대해서 가해져야 할 비판도, 그 글의 내재적인 완성도에 대한 비판이어야 합니다. ‘사람 팬 X이 말은 잘한다’ 수준의 인신공격으로 계속 갑의 글쓰기를 방해하는 일이 벌어질까봐 (아마 반드시 벌어지겠지요.) 굉장히 우려됩니다. 이것은 ‘한 번의 죄’ 로 평생 사람에게 낙인을 찍는 행위와 같습니다.

    5.
    한 번 이렇게 호된 사단을 치르고 나면 최소한 같은 잘못은 다시 하기 겁나게 됩니다. 갑이 다시 또 폭행을 일으킬까요. 다시 또 도용하겠습니까. 전 회의적입니다. 하려고 해도, 출판사도 그런 부분을 명확히 해주기를 원할겁니다. 위험은 피하고 싶겠죠. 또 저지를 가능성이 있다 할지라도, 하지 않은 미래 행위에 대한 처벌은 할 수 없죠. 갑이 앞으로 쓰는 글이 문제가 없을 가능성도 충분한데 그 가능성을 박탈할 이유도 없습니다. 한번 비윤리적인 사람은 영원히 비윤리적일 것이므로 갱생의 기회조차 주면 안 된다!...는 건 말이 안 됩니다. 심지어 피해자도 고소하지 않고 넘어갔습니다. 고소했어도 괜찮았겠군요. 고소에 따른 징역이든 벌금이든 치르고 나와서 속죄를 끝내고 다시 작가로서 살아가면 되는 겁니다.

    저는 제가 훗날 혹시 엄청 나쁜 인간이 되어서 큰 범죄를 저지른다 하더라도, 그에 대한 법적 처벌을 달게 받고 피해자의 용서를 구하고 속죄를 하겠지만 그 이상의 사회적 매장은 당하지 않고 싶습니다. 피해자와 합의했거나 법적 처벌을 받았는데도, 제3자가 제게 사회적 사망을 요구할 때 저는 이것을 정당한 처벌이라고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내가 당하기 싫은 것은 타인도 당해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6.
    만약 혹시 우리가 언젠가 만나서 수다를 떨 기회가 생긴다면 갑에 대해서 함께 실컷 욕합시다. 저도 그러고 싶습니다. 정서적으론 거기에 더 가깝습니다. 그러나 공개적으로 갑에 대해서 '글을 쓰지 마라' 고 압력을 넣을 사항은 될 수 없습니다.

    갑이 아니라 비공개님이 그 자리에 똑같이 있었다 할지라도, 스토리상으로 훨씬 심한 악녀로서 그려지는 상황이 발생한다 할지라도, 저는 비공개님의 글 쓸 권리는 폭행죄와 상관없이 지켜져야 한다고 주장하겠습니다.
  • outofegloo 2009/11/14 22:52 # 삭제 답글

    최근 소비자운동의 조류는 조선일보에 대한 직접적인 불매운동 또는 조선일보에 광고를 게재하는 대기업의 물건에 대한 불매운동까지도 주장하는 언소주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그와 동일한 차원에서, 또 글이라는 특수한 문화상품의 성격에 비춰볼 때, 나는 소비자들의 이를테면 '김현진의 글쓰기를 금하는 운동'으로 불리워질 수 있는 차원까지 나아가는 것도 정당한 소비자 주권 운동의 일부라고 생각합니다. 그로 인한 곤란을 타개하는 것은 결국 당사자인 김현진의 몫이며, 소비자들에 대한 비난으로 나아가는 것은 부적절한 일이라 생각됩니다.

    또한 글이라는 문화상품은 한 사람의 삶과 생각이 어우러져 탄생되는 진정성있는 철학과 사색의 소산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입으로는 미사여구를 늘어 놓으면서 뒤로는 온갖 추악한 행태를 일삼는 정치인들에게서 역겨움을 느끼는 것과 마찬가지로 삶과 괴리된 위선적인 글을 쓰는 작자와 그 작자가 쓴 글이 대중에게 읽혀진다는 것에도 역겨움을 느끼게 될 수도 있습니다. 김현진의 경우가 바로 그렇습니다. 쿨한 글을 쓰려고 애쓰는 쿨하지 못한 된장녀. 그게 소비자들이 위선의 가면이 벗겨진 김현진에게서 본 추함입니다. 적어도 조선일보나 변희재는 일관된 철학과 일관된 행태는 보여준다는 점에서 김현진보다는 더 읽을만한 가치가 있는 글쟁이이며, 실소를 자아내게 할지언정 그 글에서 위선의 그림자를 볼 수는 없다는 점에서 훨씬 도덕적인 글쟁이입니다.

    나 역시 지금 김현진에게 필요한 것은 절필이라고 봅니다. 설익은 삶과 설익은 생각으로 설익은 잡문들을 마구 여기저기 늘어놓기보다는 참되고 올바른 가치를 실천하는 삶을 살아가기에 힘쓰고, 부끄러운 오늘을 죽는 날까지 뼈에 사무치게 반성하며, 사색의 열매가 충분히 익었을 때 다시 펜을 잡아야 한다고 봅니다. 지금 김현진의 글이 지면에 등장하는 것은 위선자의 역겨운 냄새가 진동하는 정치판을 보는 것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는 내가 한 때 김현진의 글에 애정을 가졌던 적이 있었고, 아직도 그에게서 남아있는 가능성을 보기 때문에 권할 수 있는 말입니다.

    나아가 저는 여기서 김현진이라는 개인에 대한 사회적 비난은 정당화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도 이건희는 자본주의의 이기적 원리 아래에서 움직인 장사치일 따름인데 그를 두고 사회적으로 과도한 린치를 가해서야 되겠는가라는 반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저의 답은 '사회적 가치를 저버린 사회적 인간은 사회적 린치를 당하는 것이 당연한 사회가 건강한 사회이며, 그것을 극복하는 것은 결국 그의 몫이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극복방법의 하나가 바로 당분간은 절필과 가치 구현을 위한 밑바닥으로부터의 실천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 히요 2009/11/15 01:17 #

    이건희가 사회적 린치를 당한 적이 있던가요? 이건 좀 실소가 나오는군요. 그는 전부터 지금까지 앞으로도 늘 권력자입니다.

    비판이 아닌 린치도 건강할 수 있다는 데 대해선, 굳이 님의 생각을 뜯어고칠 맘은 없고 널리 합의가 구해질만한 명제가 아닐 거라고만 말씀드립니다.
  • outofegloo 2009/11/15 05:07 # 삭제 답글

    이렇게 되면 "사회적 린치"에 대한 정의부터 시작해야 하는 건데 지금 김현진이 당하는 정도의 "자유로운 사회활동을 제약할 정도의 심한 비난"이라고 해 두죠. 원래 히요님께서 쓴 글도 그런 의미로 사용한 것일 따름이지 뭐 뒷골목에서 쇠파이프나 칼을 휘두르는 본래적 의미로서 린치를 사용한 것은 아닐테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윗글의 요지는 사회적 비난의 물결이 김현진의 글쓰기를 금하는 수준에까지 나아가는 것이, 그래서 사회적인 린치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데까지 나아가는 것이 과연 잘못된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입장은 어떠해야 하는가 하는 부분인데 본질과는 무관한 이건희와 린치라는 단어만 부각시켜서 답글에 담아두는 것은 김현진의 글쓰기를 금하는 것에 대한 판단은 유보하는 거라고 이해하겠습니다.

    아울러 히요님께서 전체 글의 맥락은 뒤로 하고 조선일보의 주특기인 발췌형 독해로 이해하고 싶은대로만 이해를 하시니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10대, 20대의 열혈 여성 독자층에게 김현진은 분명 그들의 삶과 생각에 뚜렷한 영향을 미치는 문화적 권력자라는 것과 언소주의 조선일보 및 광고주에 대한 불매운동이나 선거에 임할 즈음 진보진영의 낙선운동이나 이건희와 그의 일가가 일부 언론지면을 통해 공개적인 인격모독을 당하는 것 등도 사회적 린치에 해당하는 내용이라는 것을 부가적으로 말해두고 싶네요.

    마지막으로 김현진의 사건을 두고 앞뒤 아무런 설명 없이 비판과 린치 두 글자 그대로의 의미만 있는 가운데에서 김현진에게 비판이라고 하는 추상적 행위를 넘어서 린치라고 하는 실체적 행위를 가하는 것까지 정당화되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일 수 있다는 명제를 부르짖는 사람은 상식적으로 없지 않을까요? 다만 그렇게 이해하는 사람은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
  • 히요 2009/11/15 05:30 #

    여러 모로 독기가 가득한 덧글을 다셨는데, 조선일보 주특기인 어쩌고까지 나갈 것도 없이 저는 님을 설득할 생각도 없고 시간도 많이 흘렀는데 초면인 님과 이 건으로 이제와서 다시 왈가왈부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래서 다른 내용에 대해서 언급을 안 하는 겁니다. 자세히 따져 들자면 반박할 꺼리가 넘치지만, 시간과 노력을 쏟아 돌아올 것도 없는데 귀찮군요. 님이 그의 글쓰기를 금하는 게 정당하다고 생각하시면 열심히 그렇게 주장하고 다니셔도 저는 안 말립니다. 저에게 뭘 원하시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님이 뭐라고 생각하시건 별로 관심 없습니다.
  • outofegloo 2009/11/15 22:46 # 삭제 답글

    사례와 비유는 이해를 돕기 위한 하나의 방편일 뿐인데 그에 독기를 느끼고 본인이 제기한 문제를 두고 스스로 시간과 노력을 쏟아 본인에게 돌아올 것이 없다고 하시니 이해할 만합니다.

    어쨌든 링크를 따라오다 이르게 된 이 블로그를 저 역시 애꿎은 시간을 낭비하며 다시 찾는 일은 없겠습니다. 다만 이런 블로그는 비공개로 그냥 혼자만 보는 블로그라면 더 좋겠다는 생각은 드네요.
  • 히요 2009/11/16 01:54 #

    하나만 바로잡지요.

    제가 제기한 문제에 대해 스스로 시간과 노력을 이미 쏟았고, 제가 더 노력할 필요를 못 느끼는 부분은 바로 '당신' 과 대화하는 부분입니다. 당신의 덧글을 하나 하나 볼 수록 당신과 소통할 가치도 의미도 못 느낍니다.

    자신이 온 세상과 우주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면 이 차이를 알 수 있을겁니다. 모른다면 교정할 생각도 없으니 그렇게 사시구요. 당신을 제외한 다른 이들에게 이미 성실히 응대하여 소통을 어느 정도는 이루었습니다. 마지막 문장은 자기 말을 받아주지 않는 블로그는 비공개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꼴이라 우습기 짝이 없습니다.

    오지마세요 ^^ 저도 님같은 방문자 없는 편이 블로그 생활 쾌적하고 좋습니다.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