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6월 14일
Things don't just happen.
마르크스가 독일 사회당의 고타 강령 중의 어린이노동 완전철폐제의를 비판하기까지 했던 ...(중략)... 그도 물론 어린이 착취를 반대하기는 했지만 어린이는 전혀 일을 해선 안 된다는 원칙에도 반대하면서 손으로 하는 노동과 교육을 병행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중략)... 장래의 교육이란 것은 생산을 증대시키기 위한 한 방법으로서가 아니라 충분히 계발된 인간을 창조하는 유일한 수단으로서, 일정한 나이의 모든 어린이들을 교육하는 과정에서 생산적인 노동에다 지식전달과 인간성 연구를 한데 합치는 교육을 말한다.” 256쪽. 『건전한 사회』E. 프롬 / 범우사
오늘날 너무나 많은 젊은이들은 재화(財貨)가 ‘저절로 생긴다’ 고 믿으며 자란다. 거의 마술처럼 서비스가 제공되고, 물건이 진열되어 있으며, 음식이 식탁에 놓인다. 오늘날 생산과 소비의 관계를, 옛날 식으로 하자면 씨를 뿌리고 작물을 수확하는 것의 관계, 목재를 베는 것과 보금자리를 짓는 것의 관계, 개울을 둑으로 막는 것과 곡물을 빻는 것의 관계를 아는 십대는 거의 없다. 이에 우리는 모든 학생들이 노동에 대한 세미나에 참석할 것을 권한다. 이를 통하여 학생들은 자신의 삶에서 노동의 중요성을 되새겨 보고 스스로 책임감 있는 삶의 선택을 준비할 수 있을 것이다. 모 영어문제집 지문. (해석본)
내 요즘 관심사.
일/노동/수고로움(원인) 없이도 소비하고 누리고 즐길(결과) 수 있다는 착각의 만연. Things just happen. 물건들은 그냥 저절로 발생한다, 는 환상. 그 뒤에 누군가가 전가된 노동을 대신 해주고 있지만 그것은 주목되지도 고려되지도 않는다.
간단하게 말해 집에 친구를 데리고 오면 자기가 간식을 준비하는 게 아니라 간식이 ‘나온다’. 아버지가 손님을 데려와도 차와 간식을 아버지가 준비하는 게 아니라 ‘나온다’. 끼니 때마다 가족 구성원 대부분이 아무 것도 안해도 밥이 ‘나온다’. 입은 옷이 더러워지면 던져 두면 세탁되어 ‘나온다’. 게다가 그걸 투정까지 한다. 더 맛있는 것을 내놓으라거나, 왜 아직 안 빨아놨냐고.
자신이 하지 않은 일의 결과물을 무상으로 누리는 삶이 지속되다보면, 그 결과물을 누리기 위해 스스로 일하고 움직여야 한다는 너무나도 당연한 원리를 망각하게 된다. 굳이 묻고 따지면 ‘그래 그러고보니 그건 내가 입고 먹는 건데도 아내가/엄마가/며느리가 하고 있구나.’ 라고 대답을 할 수는 있겠지만 평소에는 그런 생각을 묻어버리고 산다.
그런 질문을 굳이 들어도, 자신이 남의 노동력 위해 기생하고 있다는 사실이 껄끄러운 사람은 두 가지 선택지 앞에 놓인다. 하나는 직접 스스로의 필요를 스스로의 노동으로 감당하는 것. 또 하나는, 부모가 자식을 챙겨주는 건 당연하다는 식, 아내가 집안에 온 손님 접대를 맡는 건 당연하다는 식, 식사는 아내가 준비하는 게 관습 아니냐는 식으로 ‘자신에게 유리한’ 구관습을 옹호하는 것. 대부분 후자를 택하는 것은 그래야 계속 노력 없이 대가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후자의 길을 택하면 ‘역지사지’ 라는 사자성어는 무용지물이 된다. 역지사지를 시작하자면 너무 많은 것에서부터 자신의 게으름을 포기하고 스스로의 손을 움직여 일해야 한다. 그런 대대적인 부지런을 감당하기에는 너무 많은 것을 이미 무상으로 누려왔고, 역지사지는 그 모든 부조리를 인식할 것을 요구한다. 그래서 ‘역지사지로 생각하는 것’ 쪽을 포기한다.
위 예시는 가족 내의 ‘노동전가’가 주로 아내, 엄마, 딸에게 몰린다는 지적이고, 사회 내에서는 3D직종이나 기피직종 종사자, 저임금이나 외국인 노동자, 혹은 직급상 하위인 직원과 같은 권력상의 약자들에게 몰린다. 이것에 대해서는 ‘임금으로 보상을 하니까 정당하지 않느냐’ 는 논리로 정당화되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도 역지사지는 없다.
역지사지해서, 당신이라면 그 돈을 받고 그 직업을 택하는 것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는가, 를 묻는다면 대부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직업은 택하지 말고, 그런 입장에 처하지 말고, 그깟 돈 조금밖에 못 버는 힘들고 천한 일 하는 것은 안 좋다고 생각하면서, 그러면서 자신이 하기 싫은 일을 누군가에게는 시켜야 하겠기에 ‘돈을 주고 고용하는 것이니까 정당하다’ 고 말할 뿐이다.
걱정되는 것은, 스무살이 되기까지의 모든 미성년자들이 그렇게 키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학생들에게 청소시키지 말자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온다. 학생들의 본분은 일하거나 청소하는 게 아니고 공부하는 것이거나, 진보적인 사람들 마저도 ‘자유롭게 놀도록’ 해줘야 한다고 말하지 일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태어나서 19년동안 미성년자들은 일하지 않고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뼛속깊이 배운다.
부모님이 밥해주고 빨래해주고 방청소 해주고 필요한 돈대주고 이것저것 사주고, 학교든 학원이든 자신이 사용하는 건물은 청소부가 청소해주고, ‘공부만 하면 나머지 네가 하기 싫은 모든 것은 알아서 누군가 해 놓는다’ 혹은 ‘자유롭고 창의적으로 자라라, 일이나 노동은 누군가 알아서 해둔다’ 공부를 요구하든 창의적이게 놀기를 장려하든, 미성년자에게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것에 대해서 노동하지 않아도 된다’ 는 것을 생각없이 학습시키는 것은 똑같다.
먹지만 요리하지 않고, 입지만 세탁하지 않고, 쓰지만 청소하지 않고, 소비하지만 벌지 않고, 여행가지만 거기 필요한 준비를 하지 않는다. 바로 이 부분이 위험하다. 미성년자가 아무리 성인처럼 모두 감당하지 않아도 되고 성인의 보호와 보살핌을 받아야 한다고 해도 ‘완벽히 보살핌만 받아야’ 되는 존재로 키워지는 것은 위험하다. 조금이라도, 일부분이라도, ‘자신이 누리는 것을 지금은 다른 이가 대신해주고 있지만 결국은 조금씩 스스로 해내야 한다는 것’을 서서히 배워가야 하는데, 19살까지 기본 노동에 대한 학습이 완전히 배제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남에게 노동전가하는 데 그렇게도 무관심한 성인이 대량방출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관습의 힘을 빌어 어린 사람이나 직위 낮은 사람에게 시킨다. 돈으로 보상을 준다는 논리로 자신은 돈줘도 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 시키는 데에 태연해진다. 자신의 힘을 들인 노동 없이 결과물만 누리는 데 익숙해지고, 그래서 일확천금과 불로소득을 부당하다고 생각하기보다 매력적인 기회라 여긴다. 성실히 일하고 조금씩 모으는 사람들을 바보취급하고, 노력에 비례하지 않은 거금을 노릴 방안을 추구한다. 역지사지를 진지하게 생각해볼 수 없게되고, 자신은 게으르되 남은 성실하게 일해서 자기에게 갖다바치는 사회를 암묵적으로 소망한다. 그리고 그렇게 남을 써먹으려면 필요하기에, 돈을 추구한다.
생각해보자. 상사가, 자기가 마실 차나 자기가 먹을 것, 자기가 쓸 사적인 것을 부하직원에게 시키지 않을 때, 우리는 그 상사를 칭찬한다. 남편이, 자신과 자기 친구가 마실 다과를 아내를 시키지 않고 스스로 가져다 먹을 때, 우리는 그 남편을 좋은 남편이라 부른다. 시부모님이, 며느리를 시키지 않고 스스로 이것 저것 할 때, 우리는 그 며느리에게 좋은 시부모를 만났다고 말한다. 부모가, 딸만 시키고 아들을 떠받들거나 하지 않고 둘 다에게 골고루 시킬 때, 우리는 그들을 공평한 부모라 부른다. 손윗남매가, 동생에게 이것저것 시키지 않고 스스로 잡다한 잔일을 할 때, 우리는 그를 좋은 언니, 오빠라 부른다.
모두 뻔한 이야기지만, 아랫사람에게 노동을 전가할 수 있는 입장에 처하면 모두 전가해버리기 때문이다. 모두 자신이 스스로 필요한 노동을 감당해야 한다는 생각이 결여되어 있어서, 권력상 상위에 있기만 하면 하위자에게 미뤄버린다. 워낙 그런 일들이 흔해서, 스스로 하라고 요구하면 싸가지 없는 부하, 버릇없는 며느리, 기센 아내, 건방진 동생이라고 오히려 욕먹는다. 그러니 ‘자기 일을 자기가 하는’ 당연한 수준의 성실함을 두고 우리는 ‘좋은 사람’ 이라고 느끼게 되는 것이다.
어린이들에게 노동을 가르치지 않는 것, 19세가 될 때까지 밥도 옷도 집도 돈도 자신이 누리고 사용하는 그 모든 것이 모두 자신의 노력 없이 들어온다는 걸 당연히 여기고 살게 내버려두는 것, 그것은 매우 위험하다. 자신이 조금 덜 성실하고 조금 덜 부지런하게, 좀더 편하게 게으름 부릴 수 있도록 틈만 나면 누군가에게 노동을 전가하고 싶어하는 인간, 자신은 하기 싫고 남을 시키며 결과물은 자신이 누리고 싶은, 그런 인간을 양성하게 되기 때문이다.
어린이 착취를 막아야 하는 것에 찬성하지만, 어린이노동 완전철폐제의에 반대했던 것. 그 부분에 대해 나는 마르크스에게 동의한다. 충분히 계발된 인간으로 자라나기 위해, 스스로 노동해야 결과가 나온다는 기본원리를 체험할 수 있어야 한다. 부모 및 보호자는, 미성년자의 모든 필요를 대신해주는 역할이 아니라 미성년자가 그 필요를 스스로 완전히 감당할 수 있도록 보조해주고 안내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 관련글 : 《청소는 교육이다》
+ 이 글 퍼가도 괜찮은지 물어주신 분들께 대답 : YES!
“(중략)... 장래의 교육이란 것은 생산을 증대시키기 위한 한 방법으로서가 아니라 충분히 계발된 인간을 창조하는 유일한 수단으로서, 일정한 나이의 모든 어린이들을 교육하는 과정에서 생산적인 노동에다 지식전달과 인간성 연구를 한데 합치는 교육을 말한다.” 256쪽. 『건전한 사회』E. 프롬 / 범우사
오늘날 너무나 많은 젊은이들은 재화(財貨)가 ‘저절로 생긴다’ 고 믿으며 자란다. 거의 마술처럼 서비스가 제공되고, 물건이 진열되어 있으며, 음식이 식탁에 놓인다. 오늘날 생산과 소비의 관계를, 옛날 식으로 하자면 씨를 뿌리고 작물을 수확하는 것의 관계, 목재를 베는 것과 보금자리를 짓는 것의 관계, 개울을 둑으로 막는 것과 곡물을 빻는 것의 관계를 아는 십대는 거의 없다. 이에 우리는 모든 학생들이 노동에 대한 세미나에 참석할 것을 권한다. 이를 통하여 학생들은 자신의 삶에서 노동의 중요성을 되새겨 보고 스스로 책임감 있는 삶의 선택을 준비할 수 있을 것이다. 모 영어문제집 지문. (해석본)
내 요즘 관심사.
일/노동/수고로움(원인) 없이도 소비하고 누리고 즐길(결과) 수 있다는 착각의 만연. Things just happen. 물건들은 그냥 저절로 발생한다, 는 환상. 그 뒤에 누군가가 전가된 노동을 대신 해주고 있지만 그것은 주목되지도 고려되지도 않는다.
간단하게 말해 집에 친구를 데리고 오면 자기가 간식을 준비하는 게 아니라 간식이 ‘나온다’. 아버지가 손님을 데려와도 차와 간식을 아버지가 준비하는 게 아니라 ‘나온다’. 끼니 때마다 가족 구성원 대부분이 아무 것도 안해도 밥이 ‘나온다’. 입은 옷이 더러워지면 던져 두면 세탁되어 ‘나온다’. 게다가 그걸 투정까지 한다. 더 맛있는 것을 내놓으라거나, 왜 아직 안 빨아놨냐고.
자신이 하지 않은 일의 결과물을 무상으로 누리는 삶이 지속되다보면, 그 결과물을 누리기 위해 스스로 일하고 움직여야 한다는 너무나도 당연한 원리를 망각하게 된다. 굳이 묻고 따지면 ‘그래 그러고보니 그건 내가 입고 먹는 건데도 아내가/엄마가/며느리가 하고 있구나.’ 라고 대답을 할 수는 있겠지만 평소에는 그런 생각을 묻어버리고 산다.
그런 질문을 굳이 들어도, 자신이 남의 노동력 위해 기생하고 있다는 사실이 껄끄러운 사람은 두 가지 선택지 앞에 놓인다. 하나는 직접 스스로의 필요를 스스로의 노동으로 감당하는 것. 또 하나는, 부모가 자식을 챙겨주는 건 당연하다는 식, 아내가 집안에 온 손님 접대를 맡는 건 당연하다는 식, 식사는 아내가 준비하는 게 관습 아니냐는 식으로 ‘자신에게 유리한’ 구관습을 옹호하는 것. 대부분 후자를 택하는 것은 그래야 계속 노력 없이 대가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후자의 길을 택하면 ‘역지사지’ 라는 사자성어는 무용지물이 된다. 역지사지를 시작하자면 너무 많은 것에서부터 자신의 게으름을 포기하고 스스로의 손을 움직여 일해야 한다. 그런 대대적인 부지런을 감당하기에는 너무 많은 것을 이미 무상으로 누려왔고, 역지사지는 그 모든 부조리를 인식할 것을 요구한다. 그래서 ‘역지사지로 생각하는 것’ 쪽을 포기한다.
위 예시는 가족 내의 ‘노동전가’가 주로 아내, 엄마, 딸에게 몰린다는 지적이고, 사회 내에서는 3D직종이나 기피직종 종사자, 저임금이나 외국인 노동자, 혹은 직급상 하위인 직원과 같은 권력상의 약자들에게 몰린다. 이것에 대해서는 ‘임금으로 보상을 하니까 정당하지 않느냐’ 는 논리로 정당화되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도 역지사지는 없다.
역지사지해서, 당신이라면 그 돈을 받고 그 직업을 택하는 것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는가, 를 묻는다면 대부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직업은 택하지 말고, 그런 입장에 처하지 말고, 그깟 돈 조금밖에 못 버는 힘들고 천한 일 하는 것은 안 좋다고 생각하면서, 그러면서 자신이 하기 싫은 일을 누군가에게는 시켜야 하겠기에 ‘돈을 주고 고용하는 것이니까 정당하다’ 고 말할 뿐이다.
걱정되는 것은, 스무살이 되기까지의 모든 미성년자들이 그렇게 키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학생들에게 청소시키지 말자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온다. 학생들의 본분은 일하거나 청소하는 게 아니고 공부하는 것이거나, 진보적인 사람들 마저도 ‘자유롭게 놀도록’ 해줘야 한다고 말하지 일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태어나서 19년동안 미성년자들은 일하지 않고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뼛속깊이 배운다.
부모님이 밥해주고 빨래해주고 방청소 해주고 필요한 돈대주고 이것저것 사주고, 학교든 학원이든 자신이 사용하는 건물은 청소부가 청소해주고, ‘공부만 하면 나머지 네가 하기 싫은 모든 것은 알아서 누군가 해 놓는다’ 혹은 ‘자유롭고 창의적으로 자라라, 일이나 노동은 누군가 알아서 해둔다’ 공부를 요구하든 창의적이게 놀기를 장려하든, 미성년자에게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것에 대해서 노동하지 않아도 된다’ 는 것을 생각없이 학습시키는 것은 똑같다.
먹지만 요리하지 않고, 입지만 세탁하지 않고, 쓰지만 청소하지 않고, 소비하지만 벌지 않고, 여행가지만 거기 필요한 준비를 하지 않는다. 바로 이 부분이 위험하다. 미성년자가 아무리 성인처럼 모두 감당하지 않아도 되고 성인의 보호와 보살핌을 받아야 한다고 해도 ‘완벽히 보살핌만 받아야’ 되는 존재로 키워지는 것은 위험하다. 조금이라도, 일부분이라도, ‘자신이 누리는 것을 지금은 다른 이가 대신해주고 있지만 결국은 조금씩 스스로 해내야 한다는 것’을 서서히 배워가야 하는데, 19살까지 기본 노동에 대한 학습이 완전히 배제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남에게 노동전가하는 데 그렇게도 무관심한 성인이 대량방출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관습의 힘을 빌어 어린 사람이나 직위 낮은 사람에게 시킨다. 돈으로 보상을 준다는 논리로 자신은 돈줘도 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 시키는 데에 태연해진다. 자신의 힘을 들인 노동 없이 결과물만 누리는 데 익숙해지고, 그래서 일확천금과 불로소득을 부당하다고 생각하기보다 매력적인 기회라 여긴다. 성실히 일하고 조금씩 모으는 사람들을 바보취급하고, 노력에 비례하지 않은 거금을 노릴 방안을 추구한다. 역지사지를 진지하게 생각해볼 수 없게되고, 자신은 게으르되 남은 성실하게 일해서 자기에게 갖다바치는 사회를 암묵적으로 소망한다. 그리고 그렇게 남을 써먹으려면 필요하기에, 돈을 추구한다.
생각해보자. 상사가, 자기가 마실 차나 자기가 먹을 것, 자기가 쓸 사적인 것을 부하직원에게 시키지 않을 때, 우리는 그 상사를 칭찬한다. 남편이, 자신과 자기 친구가 마실 다과를 아내를 시키지 않고 스스로 가져다 먹을 때, 우리는 그 남편을 좋은 남편이라 부른다. 시부모님이, 며느리를 시키지 않고 스스로 이것 저것 할 때, 우리는 그 며느리에게 좋은 시부모를 만났다고 말한다. 부모가, 딸만 시키고 아들을 떠받들거나 하지 않고 둘 다에게 골고루 시킬 때, 우리는 그들을 공평한 부모라 부른다. 손윗남매가, 동생에게 이것저것 시키지 않고 스스로 잡다한 잔일을 할 때, 우리는 그를 좋은 언니, 오빠라 부른다.
모두 뻔한 이야기지만, 아랫사람에게 노동을 전가할 수 있는 입장에 처하면 모두 전가해버리기 때문이다. 모두 자신이 스스로 필요한 노동을 감당해야 한다는 생각이 결여되어 있어서, 권력상 상위에 있기만 하면 하위자에게 미뤄버린다. 워낙 그런 일들이 흔해서, 스스로 하라고 요구하면 싸가지 없는 부하, 버릇없는 며느리, 기센 아내, 건방진 동생이라고 오히려 욕먹는다. 그러니 ‘자기 일을 자기가 하는’ 당연한 수준의 성실함을 두고 우리는 ‘좋은 사람’ 이라고 느끼게 되는 것이다.
어린이들에게 노동을 가르치지 않는 것, 19세가 될 때까지 밥도 옷도 집도 돈도 자신이 누리고 사용하는 그 모든 것이 모두 자신의 노력 없이 들어온다는 걸 당연히 여기고 살게 내버려두는 것, 그것은 매우 위험하다. 자신이 조금 덜 성실하고 조금 덜 부지런하게, 좀더 편하게 게으름 부릴 수 있도록 틈만 나면 누군가에게 노동을 전가하고 싶어하는 인간, 자신은 하기 싫고 남을 시키며 결과물은 자신이 누리고 싶은, 그런 인간을 양성하게 되기 때문이다.
어린이 착취를 막아야 하는 것에 찬성하지만, 어린이노동 완전철폐제의에 반대했던 것. 그 부분에 대해 나는 마르크스에게 동의한다. 충분히 계발된 인간으로 자라나기 위해, 스스로 노동해야 결과가 나온다는 기본원리를 체험할 수 있어야 한다. 부모 및 보호자는, 미성년자의 모든 필요를 대신해주는 역할이 아니라 미성년자가 그 필요를 스스로 완전히 감당할 수 있도록 보조해주고 안내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 관련글 : 《청소는 교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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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큰 다음에야 자기가 알아서 극복할 문제더라도 확실히 어릴때부터 자연스럽게 몸에 배게 하는 것이 가장 좋겠지요. 다만 "그런 거 신경쓸 시간에 공부나 해" 하는 풍토가 아래 세대로 갈수록 점점 보편화되어가는 듯 해서 걱정입니다.
요사이 그 주제로 여러가지 생각하던 참이라 반가운 글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머리로는 잘못 행동하고 있다는 걸 자각하는데, 행동의 개선은 매우 더딥니다. 하나 하나씩 챙겨 할 때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부지런해야 하더군요. 그건 그동안 내 노력이 아닌 것을 너무 당연히 누리고 받아먹어 왔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일전에 한 가족이 식사준비를 할 때 열두살 된 아들이 미역국을 끓이고 아버지는 밥과 반찬을 챙기고 어머니는 텃밭에 나가 나물을 뜯어오셨다던가 이렇게 같이 식탁을 차린다는 이야길 읽은 적이 있어요. 최고. 감탄했습니다. 그렇게 살고 싶어요.
ㅇ님은 좋은 텍스트의 은총을 한껏 받으셨군요! 그것이 사회적인 분위기로 좀더 널리 자리잡으려면 얼마나 시간이 걸릴까요. 실은 어찌보면 '역지사지'만 제대로 강조해도, 그리고 '자기의 일은 알아서하자' (물론 여기서 '자기의 일' 이란 공부가 아니라 자기가 쓰고 입고 먹고 사용하는 모든 일들) 라는 기본개념만 강조해줘도 될 것 같기도 한데....
너무 단문인 리플을 남겨 죄송합니다만 정말이지 완전 공감인지라 뭐 더 할 말이 없군요.
하지만 저렇게 키워진 결과라면 남의 돈 쏙쏙 빼먹어서 자기 배만 불리기를 갈망하는 피라미드 상식(?)을 올바르다고 여기는게 당연하겠군요. 전 왜들 그리 남의 돈 울궈먹는 걸 당연히 여길까 싶어 의문이었거든요.;
이 글을 읽고 여러가지를 생각하였습니다.
지금은 밤이 깊어 글을 적기 힘드니
후에 시간이 되면 간단히 글을 적어 트랙백 날리겠습니다.
좋은 글을 적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도 부모님께서 무한대로 주시는 누릴대로 누리는 은혜만 받고 자라서 요즘의 제 게으름의 원천은 감사하지만 어쩌면 과했던 사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거든요. 트랙백 하겠습니다^_^
타인의 노동에 무관심한 것은 가까이는 부모나 가족, 양육자들의 고생 멀리는 타인의 인권 특히 노동권에 무관심한 것으로 연장될 수 있습니다. 자신이 당연한듯 누리고 있는 것들을 누리기 위해서 투쟁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이해를 할 수가 없는 것이지요.
수고스럽게 사는 것, 노동하는 것은 가치있습니다. 쉽게 편하게 자라고 양육하는 것이 전혀 올바르지 않은데 최근의 많은 양육하는 자세는 좀 더 좋은 것을 '주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있지요.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훌륭한 글 감사합니다. 조만간 트랙백해갈지도..!!
제 경우는 어려서 어머님이 돌아가시는 바람에 이곳저곳 친척분들의 손에 자라서 그런지 눈치보는것과 스스로 먹고 살아간다는 것을 비교적 일찍 깨우쳤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의 불편함을 남들에게 미루는 오류를 의식하지 못하고 종종 저지르곤 합니다.
확실히 누군가의 희생과 수고로움을 감사할 줄 모르는 시대가 되어 버린 것 같긴 합니다... 누군가는 해야 할 험한 일들이 이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데, 그것들을 묵묵히 메꾸어 주시는 고마운 분들을 잊고 사는게 아닌지, 또는 아예 의식도차 못하고 있는게 아닌지 섬짓하기 까지 한 기분이네요...
대가 없이 주어지는 것들에게 감사하라, 라는 말은 수없이 들었지만 이렇게 피부에 와 닿는 명확하고 단호한 글이라니요. 그렇게 대가 없이, 착취 위에서 당연하다는 듯이 키워진 사람이라.. 무섭습니다.
'돈 받고도 자기는 못할 일을 시키는 사람들' 아아. 가슴을 치게 됩니다.
자신이 그런 위치가 아니지만서도요.
매일 읽고 반성!
깊이 동감하고, 주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좀 퍼가도 되겠습니까.
요는 위 포스팅과 같은 사실을 알고 있느냐 모르느냐하는 겁니다.
당연한줄 알고 그러한 것을 누리느냐,
노동의 가치와 대가를 알고서 그것을 누리느냐, 이 둘의 차이는 분명합니다.
여기서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단지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사실입니다..
만일 자신이 대가를 치르지 않았더라 해도 그것은 자신의 후손이나 가까이 있는 누군가에게 응당 지불된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사실 저러한 것들을 당연하게 누린다 하더라도 상관은 없습니다.
대가는 어떻게든 지불되니까요
비록 제가 쓴 글의 성격이 뒤로 가서는 이상적인 가족 관계에 대해 논의하는 등, 논점에서 벗어나기는 하지만 트랙백 걸고 갑니다.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고 자신부터 노력하자는 논리를 '인간 관계'에 적용하면 어떻게 변할지에 대해서부터 가설을 세우고 접근하는 글이라서요.
밥, 빨래 문제같은 것도 그렇지만 전 더더욱 뼈저리게 느낀게 부엌 배수구의 음식물 조각이라던지, 화장실 배수구의 머리카락들이라던지 하는게 정말......
아 안치워도 되는게 아니고 계속 '치워지고 있었던'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좋은 글 잘 읽고 많은 생각 하고 갑니다. ^^
이젠 부끄러운 일이라는걸 아는데도 쉽지 않네요.
자기의 일은 스스로 하자 알아서 척척척 스스로 어린이
글내용과 상관없는 필자의 사상에 대해 운운하는건 좀 아니지 싶습니다.
여튼 글 잘 보고 갑니다.
결혼하면서 아내에게 한 공약 중 하나가 1년에 한번은 반드시 여행을 가자는 것과 가사분담 50%였습니다. 여행 공약은 2003년을 제외하고는 잘 지키고 있고 가사분담은 손이 재지 못해서 그런지 음식 만들기 등의 분담률이 50%가 넘지 못하지만 설거지나 빨래하기 등의 횟수를 늘려서 대충 50%를 맞추려고 노력 중입니다.
그런데 제가 놀랐던 것은 맞벌이하는 집에서 너무나 당연하게 해야 하는 일을 갖고 천사표 남편이라고 부르는 세태였지요. 아내를 요술장이로 여기는 남편들이 너무나 많다는 점에 또 한번 놀랐었고요.
예전에 변기 뚜껑 열고 닫기를 가지고 이글루스가 떠들썩했을 때도 참 의아했답니다. 화장실 청소를 스스로 하지 않는 인간들이 이렇게 많다니.... 쩝...
이야기가 많이 샜는데 하여간 완전동감입니다.
교육이 바뀌지 않는 한
병역에 대한 찬성론자들도 끊이지 않겠군요.
군대에 가서 사람이 되어 나온다는것은
이나라의 교육이 그만큼 부족하다는 말인듯 싶어요.
다른 사람의 수고와 노동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가지게 해 주는 것이 바로 교육이 아닐까 싶어요.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링크 신고도 합니다.
예비교사로서 정말 공감되는 얘기네요.. 요새는 초등학교의 경우 아이들이 방과후에 학원을 가야해서 청소를 대충 해버리거나 아예 안하고 가서 담임선생님이 혼자 그 넓은 교실을 청소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물론 소수의 경우겠지만) 아. 학부모들이 와서 청소해준다는 괴상한 얘기도 들었고. ..
어릴때부터 스스로 노동을 해온 사람과 해오지 않은 사람은 정신적인 성숙도 측면에서도 많은 차이가 날 것 같아요.
그리고 그렇게 남을 써먹으려면 필요하기에, 돈을 추구한다.
정말 끄덕여지는 문장이네요.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