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의 거래?

배려에 대한 어떤 일화를 읽은 A씨는,

"맞아! 저게 배려야. 하지만 B는 내게 그렇게 해주지 않았어. 내가 어떻게 느낄지에 대해 생각을 안해. 그는 배려가 없어."

라고 투덜대었다.

이런 말을 해주고 싶었다.

"당신이 먼저 배려하면 되잖아? 친구 B가 그 일화 속 주인공들과 같은 행동을 했어야 한다고 말하기 전에, 왜 그러지 않았을까를 먼저 생각해주면 안돼? '그는 배려가 없다' 고 말하기보다, 그럴 수 없었을 이유를 생각해주는 게 당신 쪽에서 할 수 있는 배려가 아닐까."

누구든 자신이 받고 싶은 배려에 대해선 얼마든지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이 상대방을 배려하기 위해 뭘 해야 할 지에에 대해선, 훨씬 더 고심해야 알 수 있는 법이다. 받고 싶은 건 넘쳐나게 고를 수 있지만 줄 것이라면 뭘 줘야 할지 모르겠는 것처럼.

상대방에게 배려하고 싶다면 상대방을 훨씬 섬세히 살펴보고 이해하고 알아가야 하는 중간과정이 필요하다. 즉, 대개는 자신은 하지 않으면서 상대방은 해주길 바라게 된다.

자신이 배려라 믿은 것을 상대방이 하지 않으면, 그리고 그게 서운하여 그런 배려를 꼭 받고 싶다면 '저기, 이런 경우엔 이러이렇게 해주면 안 될까?' 라고 말을 꺼내보는 게 그냥 '저 인간은 배려가 없어!' 라고 생각하는 것보다 나을텐데, 그런 건 엎드려 절받기라 싫다며 온전히 상대방이 알아서 눈치채고 배려해주길 마냥 바라는 사람도 많다.

어떤 이들은 배려를 교환물품처럼, 저쪽이 먼저 배려해줘야 나도 배려해주겠다는 식으로 조건을 걸어 내놓기도 한다. 왜 내가 먼저 배려해야 하느냐며, 먼저 배려하는 쪽이 마치 패배한 쪽이기라도 한 듯. 하지만 배려하는 마음씀씀이를 갖추는 건 자신을 위해 좋은 일인데, 그걸 손해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상대방은 왜 자길 위해 그 손해(?)란 걸 봐야 된다고 주장하는지 모를 일이다.

배려라는 건 상대방에게 해 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다. 나는 무심하게 상대방을 상처주거나 몰이해하거나 슬프게 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배려하려고 노력하지만, 그 결과 상대방이 기뻐한다면 나 자신이 그런 배려를 할 수 있는 인간이라는 게 기쁘다.

그렇지 않은가? 자신이 좀 더 나은 사람이 된다면 기쁘잖아. 상대방이 굳이 막 기뻐하지 않는다 해도, 상대방을 좀더 이해해줄 수 있게 된 자기 자신이 보람되고, 상대방이 나와 함께 있는 걸 좀더 편안해한다는 데 기분좋아지기도 하고.

그러다보면 상대방도 '아 저 사람은 나에 대해서 이런 저런 점을 신경써주는구나' 하고 깨닫고 자신도 점차 나에게 신경써주기 시작하기도 하고.

혹여 정말 배려없는 인간이라 배려해줘도 이쪽은 속만 상할 뿐이라면, 자신이 마땅히 사람으로서 주변 인물들에게 베풀고 싶은 만큼만 배려하고, 무배려인 사람에게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거나 배려에 대해서 좋은 분위기로 대화를 걸어 볼 수도 있고.... 방법이야 각자 처한 상황에 따라 각양각색이다.

다만 바람직하지 못한 걸 꼽자면, 자신이 뭔가 줬는데 받지 못했단 식으로, 그리고 받지 않으면 주지 않겠단 식으로 배려를 거래관념으로 생각하는 것. 배려를 해주고서 그 대가가 돌아오지 않았다고 배려한 걸 억울해 한다면, 배려는 장사인가?

자신이 널리 사람들을 배려해줄 수 있고 이해하려 노력하고, 그래서 자신이 아껴주고 싶은 사람을 좀 더 편안하게 만들 수 있다면 그럴 수 있는 자신이 기특하고, 또 사랑스러울 것이다.

배려는 상대방과의 관계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1차적으로는 더 사랑스러운 자기 자신을 가꾸기 위해, 자기 자신의 성숙을 위해, 우리는 배려하는 법을 배우고 또 배려하며 산다. 거래로서의 배려가 아니라, 성숙해져가는 자기 인간성의 일부로서 배려를 생각하자.

by 히요 | 2006/12/05 01:46 | How to Live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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