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의 주인공을 연기하려는
자기가 얼마나 힘들고 불행한가를 말하는 건,
위로받고 싶어서 라든가,
혹은 하소연 그 자체가 후련함을 주니까 라든가,
또는, 나는 너보다 훨씬 힘든 상황에서 이렇게 이겨낸 대견한 녀석이다 라고 생각하고 싶어서,
아니면 ㅡ '이런 힘든 상황이니까 내가 이럴 수 밖에 없어, 넌 이해해야 해, 나보다 나은 상황이잖아?!'
라고 말하고 싶거나,


내가 이렇게 힘든 것은 이런 저런 요런 조런 것 때문이다 (남탓, 환경탓)
'내 잘못이 아닌데 난 불행을 겪고 있으니 억울한 비련의 주인공이다'
라고 하면 왠지 운명에, 혹은 상황에 항의할 수 있는 기분이 되니까 ㅡ 라든가,



위와 다른 얘기로.



더 불행하고 험난한 삶을 살아온 사람의 이야길 들으면,
"그래, 난 배부른 투정을 하고 있는 거다, 나보다 힘든 사람도 훨씬 많은데."
라며 자신의 고생을 별 거 아니라고 접어 버리거나,
"아유, 안 됐네" 이후 맘속 독백 "난 그래도 그렇겐 안 산다. 다행이다."
라며 자신이 비교우위에 서 있다는 상대적 충족감을 느끼거나,



위와 또 다른 얘기로.



깊은 험난함을 거쳐온 사람의 이야길 들으면, 존경스럽다.
그들은 일찍 한 사람 이상의 몫을 하는 법을 터득했고,
그 고된 시간을 지났으면서도 어디 탓을 돌리지도 않는 어른스러움을
체득해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서 해방되기를 바라기보다,
그 안에서 동생들을 뒷바라지 하거나 부모의 빚을 갚아나가거나,
자기 하고 싶은 것 얼른 하지 못하고 이것 저것 메꿔야 되는 것을 위해 일하거나,
그러면서도 자기 하고 싶은 일을 하러 이를 악물거나,
희희낙락 농담을 건네는 그 밝은 모습 뒤에 있는 놀라운 성숙함과
억척같은 현실의 개척력이 눈부셔서.
감히 나 같은 건 갖다 대지도 못할 정도로, 한 사람 몫 이상을 하는 게 놀라워서.

지금 나만 해도 말이지 밑에 동생이 있고 집에서 만약 대학 등록비 못대준다 그러면,
내가 모은 자금 털어 동생 공부시킬 수 있을지 자신없다.
무지하게 아까워하고 아까워하고 미칠듯이 아까워하고,
왜 난 내가 모은 걸 내 것으로 저축해두는 것조차 허락받지 못했나 등등 징징댈지도.

놀라운 어른스러움, 놀라운 성장, 고통이 뭐고 가난이 뭐고 힘겨움이 뭔지,
정말 아는 사람. 그렇지만 그걸 갖고 징징대지도 않고 원망하지도 않고 (때론 할 수도)
자신을 비극의 주인공처럼 극화시키는 쪽으로 도망가지도 않고,
현실에 발딛는다는 게 뭔지 확실히 느끼게 해주는 사람들.

고생이 뭔지도 모르고 자기에게 온 게 최고의 불행인 줄 아는 나약한 불행자랑과,
이런 한 사람 몫 이상을 하는 이들의 살아온 이야기는,

하늘과 땅차이보다 더 어마어마한 차이가 난다.


불행자랑으로 징징대지 말란 소릴 하는 건 아니다.
그것이 마음 속 응어리를 어느 정도 후련하게 해준다면 얼마든지 해도 좋지.
자신에게만 가해진 어려움이란 것에 대해서 있는 힘껏 원망해도 괜찮지.

다만 말리고 싶은 건,

자신을 비극의 주인공인 양 채색하지 말 것.
왜냐면, 그것은 그런 자신을 뭔가 멋진 희생양처럼 보이게 해서
거기서 빠져나올 용기도 힘도 책임도 자기 안에서 짜내야 한다는 걸 잊게 만들기 쉬우니까.

그런 힘든 상황, 혹은 더 힘든 상황에서 고군분투한 것이,
바로 자기 자신을 훨씬 더 깊은 어른으로 성숙시켜 준다는 건 진짜다.
상대방이 '객관적으로' 잘못했거나 상황이 '객관적으로' 너무 나빠도, 그런 탓 하다보면
비극의 주인공이 되어 아무 것도 자기 손으론 어쩔 수 없는 것처럼 되고 만다.
가을 낙엽 떨어지는 스산한 날씨에 눈물을 흘리며 서 있는 고독한 한 마리 외로운 생명체...
같은 분위기 ㅡ 화끈하게 말하면 ㅡ '집어치우고' 네네 집어치우고... 절망은 그런 거 아니니까.
감상에 젖을 여유도 없이, 빨리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게 오히려 절망에 가깝달까.

모든 걸 자기 어깨에 짊어지고 갈 수 밖에 없다면 '내가 짊어지고 가겠다!' 고 생각해버려.
자신이 참여하고 있는 이것은 비극이 아니라
성장극이자 활극 (칼 챙챙 화살 슝슝) 혹은 모험극이라고 설정하고.
by 히요 | 2006/11/21 01:33 | How to Live | 트랙백(1) | 덧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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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브루하의 몇가지 생각들.. at 2006/12/01 02:05

제목 : 불행자랑 퇴치법을 전수받다. ㅋ
완전 감동먹었다. 히요님 대단하셔요 ^^ 나는 비련의 주인공이 아니라, 활극(칼 챙챙 화살 슝슝)의 주인공~~~이라고 믿는다. 난 내게 비난을 퍼붓어 줄 사람이 필요하다 . 난 아직 절망다운 절망을 겪어보지 않았다. 난 책상에 앉아 고민하기 보다는 , 발로 뛰면서 고민해야 한다. http://heeyo.egloos.com/1455872 (중략).. 자신을 비극의 주인공인 양 채색하지 말 것. 왜냐면, 그것은 그런 자신을 뭔가 멋진 희생양처럼 보......more

Commented by 리오스 at 2006/11/21 03:29
오오....좋군요.....
인생은 비극이 아닌 모험극......

히요님 포스팅을 볼때마다 많은것을 배워갑니다...'ㅂ'
Commented by Nova_Mania at 2006/11/21 12:45
어른들이 보릿고개 이야기를 하는 것과 같은 요지군요
힘들게 살았다는 것보다. 그 시련을 어떻게 극복했는가에 초점을 맞추듯 말입니다. :)

잘보고 갑니다.
Commented by 히요 at 2006/11/21 13:26
리오스님 // 감사합니다 =)

Nova_Mania님 // 그것과는 다른 이야기입니다만...
Commented by 레미앙 at 2006/11/21 16:43
조금 뜬금없을지도 모르는 이야기? :)

어제 영어회화시간에 잠깐 이야기했습니다. "당신은 자신이 언제 어른이 되었다고 깨달았습니까~" 하는 질문이었어요. 저는 제 얘기를 했습니다 'ㅁ')/

제 남동생이 저와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막둥이라, 딱 저희 아버지 은퇴하시는 해에 대학에 입학할 거예요. 부모님은 맏딸인 제가 돈을 벌어 남동생 대학 등록금을 대는 것이 당연한 거라 생각하고 계십니다. 저역시 부모님께 등록금을 받아 대학을 다니고 있으니까요. 저도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요~

....제가 스물몇살이 되어, 대학졸업이후의 삶을 계획하고, 졸업후 유학을 하고 싶다, 좀더 공부를 하고 싶어, 하고 생각하며 졸업후 취직하여 예상되는 소득을 어떻게 몇년 저축하면 유학을 갈수 있을것인가 계산하다보니.. 남동생 등록금을 제가 전적으로 책임진다면 전 20대에 유학을 갈 수 없게 되더군요;;

그래서 부모님과 여동생과 이야기를 했습니다. 남동생이 대학 진학에 뜻이 있고, 열심히 공부한다면.. 1학년1학기 등록금(본인이 대기 힘든)은 제가 부담하고, 이후는 남동생 본인이 아르바이트를 한다든가 하여 반정도를 댄다면 제가 돕겠다- 이렇게 하면 어떠냐 하고 말예요.

물론 제 유학은 더 늦춰지겠지만, 어떤 비율로 어떻게 도울지는 아직 잘 모르지만, 일단은 그렇게 의논하였습니다. 'ㅁ')/

(아아...;;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가 되는 것 같기도 하여요...;;)

책임을 모르던 중학생, 고등학생 때에는 당당하게 "내가 낼게요." 했었죠. 갓 등록금의 무게를 깨달았던 대학교 1학년때의 저는, 내가 남동생 등록금을 낸다니 말도 안돼! 하고 화를 내는 철부지였고요. 지금은 조금쯤 어른이 된것 같아요-하고 이야기를 했더랩니다..

..'ㅁ')/ 네,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전적으로 그렇게 살고 있지는 않지만, 차분차분히 할 수 있는 만큼 해 보려고 하면서요.

그렇게 살자고 말씀하시는게 아닐까 하면서, 긴 덧글 남깁니다. 건강히 잘 지내세요우. 'ㅁ'/
Commented by 히요 at 2006/11/22 00:06
멋진 누님이시로군요 ^^ 화이팅입니다.
Commented by 브루하 at 2006/12/01 02:06
트랙백 신고합니다.
좋은 글 감사

한 수 배웠습니다
Commented by 히요 at 2006/12/01 12:34
브루하님 // 네~ 반갑습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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