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09월 24일
소수자 옹호... 에서 종종 발견되는 함정.
민주화가 진행되고 개개인의 인권의식이 높아질수록 소수자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어간다. 개혁적인 마인드일수록, 진보세력에 속할수록, 소수자의 권리에 대해서 좀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다수의 일상적 무관심과 폭력을 경계하게 된다.
소수자를 응원하는 목소리는 물론 반갑고,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어쩐지 그 소수자를 옹호하는 목소리에서 기묘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그것은 그 소수자를 도덕적 존재로 미화시키고, 그들과 대비되는 다수를 폄하하는 경향을 볼 때이다.
예를 들면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권리를 말할 때, 그 사람의 신념적 자유에 대해서 주장하면 될 것을 마치 총을 들고 살상연습을 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냉정하고 나쁘고 무기를 안 드는 그들이 선량하다는 식으로 몰아가는 경우. 혹은, 예전에 「말아톤」 감독이 썼던 글 속에서처럼, 자폐아들을 옹호하기 위해 대부분의 '정상인' 범주의 사람들더러 솔직하지 못하느니 오히려 그들이 자폐아라 할만하다느니 라는 식으로 매도하는 경우. (참고) 만화나 게임 등의 마이너한 문화를 지켜낸다는 이유로,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점잖은 척 하면서 속은 텅빈 사람들로 몰아가는 경우. 저항하고 반항하는 일탈아들 혹은 자퇴생들이 사실은 건강하고 괜찮은 사람들이란 걸 말하는 걸로 부족한지, 학교 내에 남아있는 이들을 순종적이고 억압받은 이로 몰아가버리는 식의 말들.
소수자들을 응원하고 그들의 삶을 그늘에서 끄집어 내려는 노력은 좋지만, 그러기 위해 다수자들을 폄하하고 깎아내린다면 거기에는 '전투' 의 '전선' 만 생길 뿐이다. 소수자들을 응원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그들이 다수대중의 무관심과 폭력에 눌려 숨통을 조이며 살아가길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자유롭게 살 수 있는 공간을 최대한으로 늘려서, 한 명이라도 더 억압없이 살 수 있는 세상이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다수자들을 공격하고 매도하고 폄하하고, 그럼으로써 소수자들이 사실은 이러저러해서 더 낫다는 '우월성' 을 주장하고, 그럼으로써 다시 우열을 가리고, 전투하고 싸우고, 그러기 위해서가 아니지 않은가. 오히려 어느 것이 더 낫고 어느 것은 잘못되었고 등의 그 '가르기' 를 없애기 위한 싸움이 아닌가? '다수와는 다르고 평범하진 않지만 원한다면 이렇게 살 수도 있다!' 는 걸 목청높여 외치는 게 소수자의 권익보호라고 생각하는데. '우리 소수자가 바람직하고 아닌 다수자가 나쁜놈에 파시즘에다가 바보다' 라는 식으로 나가봤자... 뭐가 좋다고. 보복을 하고 분풀이를 하는 것밖에 안 된다. 당연히 거기에는 재보복이 뒤따른다.
그러니, 소수자 옹호는 소수자의 삶이 그 자체로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한다고 다수대중이 받아들일 수 있게 설명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탄압받을 때 '저항' 하는 것이어야 한다. 처음부터 싸우려 들 게 아니라. 그리고 다수대중의 경직된 사고방식을 비판할 때에도, 그 스스로 다수대중의 일원으로서 경직된 사고방식을 '유연하게 넓히자' 며 '함께' 할 것으로 만들어야지 '너희 우매한 다수대중은 경직되어 있다' 고 비난하는 식이 아니어야 한다. 이런 화합의 말걸기가 되지 않는다면, 소수자 옹호는 또다른 전투의 시작이 될 뿐이다. 싸워 이기면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싸움에 이긴 자가 있으면 거기엔 또 진 자가 있고, 지게 되면 이번엔 그쪽이 소수자가 된다. 그러니 소수자 옹호와 다수권력에 대항한 반론은 ㅡ 당장은 확실히 전투에 가깝지만 ㅡ 궁극적으로는 싸움이 아니라 화합의 말걸기여야 한다.
소수자를 응원하는 목소리는 물론 반갑고,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어쩐지 그 소수자를 옹호하는 목소리에서 기묘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그것은 그 소수자를 도덕적 존재로 미화시키고, 그들과 대비되는 다수를 폄하하는 경향을 볼 때이다.
예를 들면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권리를 말할 때, 그 사람의 신념적 자유에 대해서 주장하면 될 것을 마치 총을 들고 살상연습을 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냉정하고 나쁘고 무기를 안 드는 그들이 선량하다는 식으로 몰아가는 경우. 혹은, 예전에 「말아톤」 감독이 썼던 글 속에서처럼, 자폐아들을 옹호하기 위해 대부분의 '정상인' 범주의 사람들더러 솔직하지 못하느니 오히려 그들이 자폐아라 할만하다느니 라는 식으로 매도하는 경우. (참고) 만화나 게임 등의 마이너한 문화를 지켜낸다는 이유로,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점잖은 척 하면서 속은 텅빈 사람들로 몰아가는 경우. 저항하고 반항하는 일탈아들 혹은 자퇴생들이 사실은 건강하고 괜찮은 사람들이란 걸 말하는 걸로 부족한지, 학교 내에 남아있는 이들을 순종적이고 억압받은 이로 몰아가버리는 식의 말들.
소수자들을 응원하고 그들의 삶을 그늘에서 끄집어 내려는 노력은 좋지만, 그러기 위해 다수자들을 폄하하고 깎아내린다면 거기에는 '전투' 의 '전선' 만 생길 뿐이다. 소수자들을 응원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그들이 다수대중의 무관심과 폭력에 눌려 숨통을 조이며 살아가길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자유롭게 살 수 있는 공간을 최대한으로 늘려서, 한 명이라도 더 억압없이 살 수 있는 세상이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다수자들을 공격하고 매도하고 폄하하고, 그럼으로써 소수자들이 사실은 이러저러해서 더 낫다는 '우월성' 을 주장하고, 그럼으로써 다시 우열을 가리고, 전투하고 싸우고, 그러기 위해서가 아니지 않은가. 오히려 어느 것이 더 낫고 어느 것은 잘못되었고 등의 그 '가르기' 를 없애기 위한 싸움이 아닌가? '다수와는 다르고 평범하진 않지만 원한다면 이렇게 살 수도 있다!' 는 걸 목청높여 외치는 게 소수자의 권익보호라고 생각하는데. '우리 소수자가 바람직하고 아닌 다수자가 나쁜놈에 파시즘에다가 바보다' 라는 식으로 나가봤자... 뭐가 좋다고. 보복을 하고 분풀이를 하는 것밖에 안 된다. 당연히 거기에는 재보복이 뒤따른다.
그러니, 소수자 옹호는 소수자의 삶이 그 자체로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한다고 다수대중이 받아들일 수 있게 설명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탄압받을 때 '저항' 하는 것이어야 한다. 처음부터 싸우려 들 게 아니라. 그리고 다수대중의 경직된 사고방식을 비판할 때에도, 그 스스로 다수대중의 일원으로서 경직된 사고방식을 '유연하게 넓히자' 며 '함께' 할 것으로 만들어야지 '너희 우매한 다수대중은 경직되어 있다' 고 비난하는 식이 아니어야 한다. 이런 화합의 말걸기가 되지 않는다면, 소수자 옹호는 또다른 전투의 시작이 될 뿐이다. 싸워 이기면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싸움에 이긴 자가 있으면 거기엔 또 진 자가 있고, 지게 되면 이번엔 그쪽이 소수자가 된다. 그러니 소수자 옹호와 다수권력에 대항한 반론은 ㅡ 당장은 확실히 전투에 가깝지만 ㅡ 궁극적으로는 싸움이 아니라 화합의 말걸기여야 한다.
# by | 2006/09/24 03:34 | How to Live | 트랙백(2)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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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자를 위해주자는 식으로 설득할 때엔, 그 소수자가 참하고 착하고 상냥하고 아름답다는 식으로 말하면 잘 먹히긴 하지요. 다만 그 소수자는 그런 '가면' 에 다시 한꺼풀 덮힐 뿐, 진정 있는 그대로 존중받지 못하는 상황은 그대로이고.
이것 역시 트랙백 해갑니다 ~ 하하
그리고 글을 퍼갈 때에는 사전동의를 먼저 물어봐주시고요,
글 주소로 링크도 해주셔야 합니다.
글을 퍼가도 괜찮을까요? 주소는 http://khkh.net 의 자유게시판 입니다.
네, 퍼가도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