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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 해결 프로세스 How to Live

일전에 썼던, 스트레스를 받으면 즉시 작동한다는 나의 ‘최단시간에 외부적 요소를 잠정 해결하고 감정적 요소를 해소할 최적의 프로세스’ 라고 했던 것에 대해서 몇 가지.

저는 언제나 문제해결에 관심이 많습니다. 문제를 덮어놓거나, 문제를 잊고 기분전환이 될 활동을 하거나, 문제를 피해가거나 이런 식으로 대처하면 많은 경우 다시 그 문제를 마주치게 되거든요. 아니면 그 문제가 낳은 더 불편한 상황에 맞닥뜨리거나. 피한다고 피해지는 거면 피하면 되지요. 눈 앞에 있는 모든 문제를 반드시 해결하면서 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고, 피할 수 있으면 피하는 게 좋은데, 피한다고 피해지는 게 아닌 건 해결하고 지나가야 마음에 부담이 덜합니다. 그게 올바라서가 아니라 안 하면 ‘나중의 내가’ 덮어쓰니까.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순서가 있다기보다는 복합적으로 처리되는 것이긴 하지만, 이런 생각들을 하지요. 나 말고 타인에게도 자주 발생하는 문제인가? 살면서 계속 지속적으로 발생할 문제인가? 근본적 해결책은 없는 문제인가? 디폴트로 존재하는 불편이라고 보아야 하는가? 여기에 ‘그렇다’로 답이 나오는 것들은 주로 ‘사람이 사람에게 사소하게 짜증을 주는 일들’이지요. 지하철에서 누가 밀거나 밟고선 사과도 안 했다든지, 모르는 사람이 뒤에서 험담을 하는 걸 들었다든지, 예상치 못하게 비가 내린다든지.... 이런 건 ‘이런 것에 일일이 신경쓰지 말고 늘 일어날 수 있는 일로 생각하는 방향’으로 처리합니다. 이런 걸 하나 하나 기분나쁘고 억울한 일로 인식하기 시작하면 평생 매일매일 기분나쁠 수 있고, 예방할 방법도 마땅히 없고, 그냥 이건 비포장길에 돌이 있는 게 당연한 거랑 똑같아! 내가 잘못한 게 없어도 비포장길 돌더러 왜 걷기 불편하게 돌이 있냐고 할 순 없잖아. 타인들이 뒷담을 안 하고 질서를 지키고 발 밟으면 사과하고 기상청은 언제나 정확한 예보를 하고...... 이런 일은 영원히 일어나지 않습니다. 타인들의 윤리나 역할에 대해 비난하는 것은 결코 해결책이 아니며, 그보다는 자기 성격이 나빠지는 일에 가깝습니다.

타인에게는 자주 발생하지 않고 나에게만 자주 발생하는 일, 어느 정도의 재량으로 예방이 가능한 일, 디폴트이더라도 횟수를 줄일 수는 있는 일들은 각각의 경우에 맞춰 내가 무엇을 하면 그럴 수 있는지를 찾습니다. 쓰려니 갑자기 떠오르는 게 없네. 그런데 이 때에도 남이 나에게 올바르게 대했는가 아닌가는 문제해결에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세상 모든 남이 내게 올바르게 행동하는 날은 오지 않고, 그런 걸 바라거나 비난하기 시작하면 평생 비난밖에 할 게 없어요. 남들이 어떻게 행동하는가는 그 각각을 관찰 후 감안해야 할 고정요소고, 나는 그 행동들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는 게 나에게 가장 좋은가를 찾아야 할 뿐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학생이 반은 열심히 한답시고 반은 장난치고 싶어서 수업에 방해가 될 정도로 (당연히 내가 짜증이 남) 수업중에 내게 말을 건다면, 그 학생에게 ‘이러저러하니 그러지 말라’고 말이야 해둬야겠지만, 그 학생이 그 말을 알아듣고 그러지 않기를 바랄 것이 아니라 ‘다시 그렇게 할 경우 내가 어떻게 반응할지’를 여러 버전으로 대비해 두면 되는 것입니다. ‘지금 할 게 많아서 그 대답은 쉬는 시간에 오면 해줄게요’ 하고 넘기기, ‘지금은 선생님이 말할 게 많아서 잠깐 듣고 있어주면 고맙겠다’ 라고 말하기, ‘질문시간 따로 줄게요’라고 말하고 마치기 3분전에 시간 주기 등등. 이게 다양할수록 학생에게 내가 화내지않고, 학생에게도 무시하는 느낌을 주지 않고 그 상황에서 방해하는 말걸기를 멈추게 할 수 있습니다. 이러면 나중에 후회하지도 않으면서 방해는 차단할 수 있음.

이 때에도, ‘내가 무엇을 하면 반드시 해결될 것이다’ 같은 잘못된 명제를 가지고 있으면 결국 고통받는 건 나입니다. 뭐든 단번에 최적의 해결책이 생길 리 없고 사람들은 다양한 반응을 하며 문제도 다양하게 발생하니까. 그러니까 ‘내가 이렇게 하면 완화되는지 한 번 시도해보자’ 정도의 마인드로 해결책을 강구하고 시도하는 게 좋습니다.

누군가 나에게 모순되는 지시를 했을 때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라는 문제가 화두였던 적이 있는데, 상위자에게 ‘당신의 지시는 이러한 모순이 있습니다’ 라고 말하기도 어렵거니와 용기내어 말해봐야 서로 감정만 상하는 일도 많고 내 지적이 포괄적인 암묵지의 관점에서는 부적절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내 지적이 완벽히 옳았어도 상대방이 못 받아들이고 부정적으로 반응한다면 ‘그 사람이 나쁜’ 게 아니고 ‘내 수단을 바꿔야’ 하는 문제죠. 그게 변화를 이루기 훨씬 빠르니까. 지금은 저 문제가 해결프로세스가 완성되어 별 문제가 아니게 됐는데, 간단히 말하자면 모순되는 지시를 그때 그때 중용을 떠올리며 따르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일들은 흑백 이분법이 아니니까요. 학생들에게 엄해야 한다는 지시가 온다면 엄함을 +1하면 되고, 학생들에게 좀 너그러울 필요가 있다는 지시가 온다면 너그러움 +1하면 된다는 얘기. 혹은 학업적인 면에서 너그러움 +1, 생활태도의 면에서 엄함+1 할 수도 있는 거죠. ‘지난번엔 엄하게 하라고 하셨잖아요’ 한다고 아무 해결 나지 않고 악화만 되지. 지난번엔 엄하게 할 필요가 있는 조건(학생, 시기, 사건, 내 상태 등등)이었는데 지금은 약간 너그럽게 할 필요가 있는 조건인가보다 생각하고 그 조건들을 관찰하면 됩니다. 그리고 내 생각에 여전히 엄함+1하는 게 나아보이더라도 너그러움+1 한다고 해서 큰 문제가 없을 것 같으면 지시받은대로 너그러움+1을 하는 게 낫습니다. 정 아닌 것 같으면 알겠습니다 하고 내 판단대로 하면 됨..... 단 이럴 땐 내 판단대로 해서 문제가 새로이 발생하지는 않는다는 확신이 설 때.

숙제 내지 말라고 하고서 나중에 숙제 나가는 거 없냐고 물어오실 때도 있고, 숙제 내달라고 하고서 나중에 숙제 줘봐야 압박이 될 뿐이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것도 상대방의 모순이라기보다는 숙제 안 내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가 관찰 후 숙제 내는 게 낫겠다고 판단이 바뀐 경우라고 봐야 합니다. 후자도 마찬가지. 관찰 후 판단이 바뀌는 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니까. 내게 말하지 않았어도 저렇게 말한다는 건 `같은 대상을 관찰중이니 같은 판단을 할 수 있다` 고 예상한다는 거고, 그러니 이전에 숙제 내지 말라고 했어도 낼만하고 소화할만한 거 같으면 내 재량으로 낼 수도 있다는 의미가 되는 거..... 그럼 내 재량대로 내거나 안 내거나 하면 되고, 내도 될 것 같다고 하면 내고, 안 될 것 같다고 하면 그 시점에서 안 내면 됩니다. 왜 이랬다 저랬다 하냐고 어느 장단을 맞춰야 하냐고 면전에서 말하는 것도 의미없고 뒤에서 씹는 것도 의미없고 일일이 숙제 낼지 말지 묻는 것도 마이너스고, 그런 방향으로 생각하는 것 자체가 안 맞을 수도 있거니와 오로지 내 감정적 손해라고 생각함.

친밀하거나 자주 교류하는 누가 나에게 서운한 행동이나 잘못된 행동을 했다, 그러면 그 사람 입장에서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관점에서 먼저 생각합니다. ‘어떻게 내게 그럴 수가 있어?’ 라는 관점에서 생각하거나 내 관점에서의 생각에 몰두하면 더 열받고 더 미워집니다. 객관적으로 2쯤 되는 사건이 자기 시나리오 안에서 9로 증폭되고 상대방은 당연히 그렇게까지는 잘못한 거 아니라 생각하지요. 그러면 사과도 안하거나 사과도 만족스럽지 않게 되어서 풀리질 않거든요. 그러니 내가 그 사람이라 치고 (나라면 안 저런다! 말고, 진짜 저런 성격의 저런 타입의 사람이라 치고) 그렇게 하게 된 나름의 주관적으로 합리적이거나 자연스러운 사고의 흐름을 짚어 이해한 다음에, 그래도 반복되면 내가 기분나쁘니까 이의표시를 하긴 해야겠고, ‘저 사람 사고방식에는 뭐라고 말하면 미안해하고 다시 안 그러게 주의하겠다고 할까?’ 이걸 생각해서 말을 준비하고 상황을 고릅니다. 생각만 한 뒤 바로 말을 하면 말에 감정이 덕지덕지 붙어 의도와 다른 분위기를 낼 수도 있고, 부적절한 상황에선 잘 될 일도 안 될 수 있으니까. 그리고 어색하고 긴장된 분위기는 나도 싫으니까 가급적 밝고 진지하게. 이렇게 하면 상대방은 대부분 미안해하고 적절한 사과를 합니다. 거기에는 내가 과하게 질책하지 않고 큰 사과를 요구하지 않는 것도 있고요.

말이 안 통하는 사람도 ‘그 사람의 사고패턴’을 관찰해서 파악하면 그 사람에게 통하는 화법을 개발할 수 있는데, 이건 꼭 그 사람과 소통하기 위해서라는 이상적인 이유는 아닙니다. 전략적으로 내게 싫은 짓을 하지 않게 만든다는 차원에서 실질적 이득이 있어요.

학원에서 같이 지내야하는 선생님들과 학생들, 그리고 집에서 같이 지내야하는 배우자와 자녀, 자주 만나 협력해야하는 우리 부모님 등 가까운 사람들과 안 맞는 부분이 있다면? 일단 가능한 한 저부터 스스로 다 바꿉니다. 양보하는 개념에서나 나를 버리고 남에게 맞춰주는 그런 거 아니고, 나 편하려고. 무슨 의미냐면 결벽증이 있으면 자기만 괴롭습니다. 만약 그 결벽증의 수준을 스스로 낮출 수 있다면 상당히 많은 장소에서 받을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겠죠. 그런 의미에서 내가 기준이 너무 까다롭거나 높은 부분은, 일단 내가 버릴 수 있는 수준에서 최대한 스스로 버려봅니다. 내가 유지할 수 있는 영역에선 유지하고, 어차피 남들이 절대 못 맞춰줄 영역에서는 그 기준을 고수해봐야 서로 괴롭고 일단 내가 괴로우니까. 예를 들면 시간관념이 흐린 지인과 약속을 하고 같이 뭘 해야하면, 내 시간관념도 대충 흐리게 정하거나 ㅋㅋㅋㅋㅋㅋㅋㅋ 같이 하는 활동의 목표치를 그러고도 달성 가능한 정도로 낮추거나 ...... 하다 흐지부지 될 수도 있다고 미리 가정해 놓는 거죠. 만날 때 정시에 안 나타날 확률이 높다면 신경 안 쓰고 나 할거 하면서 기다릴 수 있는 장소에서 약속하거나, 오긴 왔는데 준비할 걸 하나도 안 해 왔다면 할 수 있는 곳으로 이동하고 나는 나할 거 하거나. 이걸 처음 당하면 빡치지만 관찰 결과 이 사람은 다시, 자주 이럴 수도 있다 싶으면 적응은 내가 합니다. 늦어도 나도 안 미안해도 되고 약속 시간에 상관없이 이쪽도 여유로울 수 있어서 좋은 점도 있어요. 상대방에게 이렇게 해줬으면 좋겠다 요구는 하는데 의사표현일 뿐 변하든 말든 그건 그 사람에게 달렸으니 보장이 없죠. 엄청 깐깐하고 까다로운 사람과 뭘 한다! 그러면 막 마감시간보다 하루 앞서서 일을 다 준비해놓고 끝내놓고, 약속시간도 막 30분씩 더 일찍 나가있고 그럽니다. 혹시나 내가 늦거나 일을 덜 해놔서 스스로 자책감 드는 일을 막으려고. 그럼에도 그런 일이 벌어졌다면, 깔끔한 사과를 반복적으로 하고 바로 일할 것. 변명할수록 어버버거릴 수록 속으로 억울해하거나 자기변명을 찾을 수록 나중의 내가 괴로워질 뿐이다....

이러니 육아에서도 기본적으로 ‘적응은 내가 한다’와 ‘상대의 관점에서 정당화한다’, ‘통하는 화법을 쓴다’가 적용됩니다. 호잉이가 입에 음식 넣고 말하거나 음식을 굳이 일부러 보여주는 행동을 했는데, ‘으익 입에 음식 넣은 건 보여주지 마. 그런 거 보는 거 싫어’ 라거나 ‘음식 입에 있을 땐 다 먹고 말해요’ 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러면 바로 그렇게 따를까? 그럴 리가 없음. 일부러 더 보여주기도 하고, 일부러 더 말하기도 합니다. 애한테는 아직 전혀 그 룰이 체감될 이유가 없거든. 이 때 빡치면 아이의 문제일까요 내 문제일까요? 나는 이게 내가 수단을 조절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당장 한 번 말한 걸 아이가 듣게 만드는 것이 더 비합리적이고 긴 고통을 초래하는 해결책이거든. 아니 그렇게는 어쩌면 아예 해결이 안 될수도. 그냥 그럴 때마다 같은 반응을 보여주며 물처럼 공기처럼 스며들듯 두니 며칠 지나 배웠습니다. 가끔 일부러 보여주는 장난을 치지만, 입에 넣은 음식은 보여주는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잘 다물고 가려서 먹어요. 다른 사람이 입에 뭐 넣고 말하면 ‘입에 있는 거 다 먹고 말해야지이이이이~’ 함 ㅋㅋㅋㅋㅋ 이게 저 세 가지 방법이 현재 호잉이에게 적용된 형태입니다. 반대로 적응을 애가 하도록 하고, 내 관점에서 정당화하고, 내 화법을 일방적으로 쓸 거면, ‘음식을 입에 넣고 보여주거나 말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고 비위상하는 행동이므로 애가 그 행동을 해서는 안 되며 할 때마다 엄하게 혼낸다 (혹은 자상하게 타이른다)’가 될 수 있을텐데, 이러면 스트레스가 줄어들까 늘어날까? 나는 후자라고 확신함.

이런 방식은 내가 자아가 엄청나게 강하고 자기의견 말하는 데 주저가 없는 사람이라 내게 맞는 것입니다. 만약 자기를 내세우는 걸 피하고, 자기의견을 말하지 않는 편이라면, 남에게 원래부터 맞춰주다가 스트레스를 받는 타입이라면 이렇게 하면 더 열받을 뿐일 수도 있어요. 나는 남에게 내가 맞춰줄 수 있는 영역을 넓히는 것까지 내 융통성-유연성이자 능력이라고 생각하는 타입이라서 남에게 맞춰줘놓고 즐거워하는 거고요. 자기 의견을 관철시켜야 이겼다고 생각하고 속시원한 타입이 있는 반면, 나같은 경우엔 내 의견이 합리적으로 변하고 상대방의 의견 역시 그렇게 변해서 서로의 간격이 약간이라도 좁아지면 성공이라고 뿌듯해하는 타입입니다. 자기가 어떤 조건에서 속이 상하며, 어떤 조건일 때 기분이 좋아지고, 어떻게 반응하는 타입이며, 다른 타입들을 대할 때 반응패턴을 여러 개 구비하고 있는지 어떤지를 살펴서 많이 갖출수록 다양한 대응을 할 수 있겠지요.

이게 내가 제갈공명 및 중국 춘추전국 시대의 책사들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범죄물, 수사물, 탐정물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그 시절 책사들이나 저런 장르의 주인공들은 무엇이 옳네 그르네 누가 잘못했네 아니네 이랬어야 하네 내가 옳네 말하지 않습니다. 고도의 지능범들은 상대방을 속이기 위해 상대방의 생각, 기분, 화법, 취향까지 모든 걸 맞춰 환심을 사거나 함정에 빠뜨릴 수 있고, 수사 역시 그런 범죄자들과 우연적 요소들을 디폴트로 두고 해결책을 단계별로 밟아갑니다. 책사들은 옳고 그름보다 효과를 낼 것인가 아닌가를 전략적으로 따지며, 홈즈는 범인을 밝혀내는 순간까지도 범인이 빠질 법한 함정연출까지 전부 즐거워하며 행하는 인물이지요. 그러려면 범인한테 증거를 들이대어 따져서 말로 ‘내 논리가 옳네’ 할 게 아니라, 그걸 보여줄 행동을 범인이 하도록 만들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차원에서 스트레스 해결 프로세스들과 문제해결력은 내게는 결국 같은 선상에 있어요.

이런 프로세스를 만드는 작업에 가장 훌륭한 교과서라면 여전히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겠습니다. 옳지 못한 전략까지 포함해서.


+

시험문제 내는 거 마무리하고서 완전 못놀았는데 자기 아깝다고 오버워치 두 판 하고 잔다는 게 글을 쓰다보니 새벽이 깊어지다못해 아침이 밝아오고 있어서 정신이 맑지 못한지 문장이 엉망이네요. 감안해주세요 ... 심지어 쓰다보니 반말 높임말이 왔다갔다 한지라 고친다고 고쳤는데 많이 남아있을 것입니다. 낮에 왕창 고칠 수도 있음. 아 오버워치 하고 잘까 그냥 잘까 고민중.

호잉이 이야기 Lamp

1.
아즈가 내게 뭔가 초딩드립을 치고 내가 뭐라 받아줘야 좋을지 몰라 애매한 표정을 하고 있자 아즈가 미안하다고 했다.

아즈 > 미안해~
호잉 > 아빠 괜찮아아~
아즈 > 엄마한테 말한 거야.
호잉 > 엄마. 아빠가 왜 그래?
나 > 아빠가 이상한 말 했거든.
호잉 > 아빠~~~ 잘해야지이~~~~

ㅋㅋㅋㅋㅋㅋㅋㅋ

2.
우리 엄마가 병원서 주사 맞고 오신 날.

할 : 할머니 주사맞고 왔어요.
호 : 아아아아 아팠겠다아아 할머니 울었어?
할 : ㅎㅎㅎㅎㅎㅎ 할머니는 안 울었어.
호 : 할머니는 안 울었어? 대단하네에에~ 호잉이는 울었어.

3
울 엄마가 호잉이에게 호박죽을 주었다. 다 먹고 마지막에 그릇 여기저기 붙은 걸 호잉이가 긁어먹지는 못한다. 그래서 엄마가 그걸 사사사삭 긁어서 떠주었는데 그 동작을 보고 있던 호잉이 왈

"우와 할머니 팔 빠르다~~~"

ㅋㅋㅋㅋㅋㅋㅋㅋ

과연 자잘한 감탄사가 매우 잦은 우리 부모님과 나의 영향을 받은 거 같다. 호잉이도 별별 일에 이렇게 감탄을 날린다.

4.
글자를 알고 폰을 아니까 호잉이가 뭘 하냐면, 할머니 폰을 가져다 놓고 전화걸기 버튼을 눌러 연락처 목록을 하나하나 내리면서 보더니 "엄마" 라고 되어있는 걸 누르더라고 한다. 울 엄마가 그 순간 딱 보고는 얼른 발신을 정지하고 호잉이에게

"호잉아, 그건 할머니의 엄마야. 호잉이 엄마 아니야. 호잉이 엄마는 여기 봐봐, `이쁜 딸` 있지? 이게 호잉이 엄마야."

라고 말씀해주셨다고.

그 후로 호잉이는 할머니 폰을 가져다 연락처 열어서 `이쁜 딸`을 찾아 혼자 내게 전화를 건다 ㅋㅋㅋㅋㅋ 엄마 전화가 와서 받아보면

나 > 네 엄마~
호 > 엄마아아아아아아
나 > 엥? 호잉이네?
호 > 네에에에에! 엄마한테 전화 했어요오오오!
나 > 그렇구나~ 뭐해?
호 > 할머니하고 할아버지하고 놀고 있었어요오오오!
울엄마 > 호잉아 엄마 일하게 그만 끊자
호 > 엄마아 그럼 이따 저녁에 봐요오오오?

이러고 끊는다 ㅋㅋㅋㅋㅋㅋ 내가 용건 없는 안부 전화를 잘 걸지 않는 사람이라 이런 걸 자식에게 받으니 되게 신기하기도 하고 그렇다.

5.
오늘 진짜 오랜만에 `구슬비` 동요를 불러주었다. 호잉이는 가만히 귀기울여 듣더니 뭔지 모르지만 많이 들어본 노래라는 것을 알았던 모양이다.

호 > 엄마 그거 무슨 노래야?
나 > 이거 `구슬비` 야.
호 > 구슬비. 구슬비. 또 불러주세요.

다시 불러주니 내가 부르는 것을 약간 늦게 따라부르듯 확인하듯 작은 소리로 따라 불렀다. 최근 1년 반 사이에는 안 불러줬는데 기억이 나는 모양이다. 애기띠로 안아주던 시절엔 하루에도 몇 번씩 부르며 매일매일 들려주던 노래니까 그런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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